[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 15일 중국이 화성 착륙에 성공하자 모두들 궁금해 한다. 도대체 중국이 무슨 수로 수십년 앞서가던 미국의 우주 기술을 따라잡았을까?
◆십년마일검(十年摩一劍)
무협지의 제목이 아니다. '십년간 검 하나를 간다'는 뜻의 중국 시(詩) 한 귀절인데, 지난 3월 리커창 중국 총리가 소환해 화제가 된 말이다. 지금 기술 부족으로 자립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도체 등의 과학기술 개발에 힘써 10년 내 반드시 성과를 거두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한 정권이 4년도 못돼 흔들리는 우리나라 같은 민주주의 체제에선 꿈도 못꿀 얘기지만,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인 중국의 입장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과학기술개발에 대한 중국 정부ㆍ공산당의 적극적이고 집요한 의지를 상징하는 말이 바로 '십년마일검'이다.
중국은 1949년 건국 당시 변변한 공장 하나없는 농업 국가였다. 고작 10여년 후인 1960년대 이른바 '양탄일성(원자탄ㆍ수소탄ㆍ인공위성)'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옛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크게 뒤지지 않은 것은 이같은 정부 차원의 끈질기고 집요한 의지와 노력이 있었다.
특히 중국 당국은 우주개발 등 과학기술 개발과 관련해선 행정부서, 연구기관, 생산공장 등이 혼연일체가 된다. 과학연구생산 연합체를 구성해 일체의 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목표 달성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행정기관 따로, 연구기관 따로, 생산 공장 따로인데다 정권 교체기마다 파동이 심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첸쉐썬의 귀국
1955년 9월, 한여름 더위가 계속되던 베이징에 미국에서 귀국선을 타고 돌아 온 40대 중국인이 도착했다. 그의 이름은 첸쉐썬. 바로 중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존재다. 부친이 국민당 정부 각료였던 첸쉐썬은 캘리포니아 공대(칼텍)를 졸업한 후 2차 대전 당시 칼텍의 제트추진연구소에서 근무했다. 미국은 물론 종전 후 독일의 V2로켓 기술을 흡수해 당시 세계 최고의 로켓 기술자로 손꼽혔다. 공산화된 중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를 돌려 보낸 것은 미국이었다. 1950년대 초 불어닥친 매카시즘 광풍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부쳤다. 5년간 가택연금 등 핍박에 견디다 못한 첸쉐썬은 아버지의 친구인 천수퉁이 마오쩌둥 주석 체제에서 고위직에 오른 것을 확인한 뒤 중국 당국에 귀환 의사를 전달했다. 미 정보 당국이 "첸쉐썬은 5개 군단보다 무서운 인물"이라며 강력 반대했지만 저우언라이 중국 부총리의 비밀 협상이 통했다. 무엇보다 '빨갱이' 취급에 지친 첸쉐썬의 자진 귀환 의사를 막지는 못했다.
첸쉐썬은 돌아 온 후 중국 군부 고위층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다. 한국에서 벌어진 '항미원조전쟁'에서 미국의 첨단 무기에 형편없이 당했던 중국 군부는 새 무기에 대한 갈증이 컸다. 그는 곧바로 소장 계급을 단 후 국방부 제5연구원장에 취임해 '양탄일성' 개발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1960년대 초반 옛 소련의 도움으로 첫 장거리 미사일 '둥팡1호'를 완성했고, 중ㆍ소 갈등이 심화된 후엔 독자 기술로 1964년 둥팡2호를 개발하는 등 중국의 로켓 기술 개발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이같은 첸쉐썬의 중국 귀환 스토리는 세계적으로도 '과학기술인재 유출'의 대표적 사례로 첫 손에 꼽힌다.
첸쉐썬 뿐만 아니었다. 중국은 지난 1999년 첸쉐썬을 포함한 양탄일성 공훈자 22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는데, 이중 19명이 해외 유학파였고 나머지 2명도 외국 연구 경력이 있었다. 가진 것 하나 없었던 중국은 애초부터 '자력갱생 위주로 하되 외국의 지원을 확보하고 자본주의 국가들의 기존 성과를 이용한다'는 생각이었고, 이를 철저히 관철시켰다.
◆집중적인 투자
중국은 2010년 이후 '우주 굴기(몸을 일으킴)'를 본격화하면서 우주정거장 건설ㆍ화성 및 달 탐사, 바이두(중국판 GPS) 구축 등 적극적인 우주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 15일 화성 표면 착륙에 성공한 톈원(天問)1호는 궤도선, 착륙선, 로보 등 미국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기술력을 선보여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집중적인 투자 덕분이다. 중국의 2020년 기준 총 우주개발 예산은 81억 달러로, 지난 10년간 매년 10%씩 증가했다. 중국의 우주 개발 조직과 인력은 거대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소속 1000여명이 전담하다시피 하는 한국과는 비교가 된다. 국방과학기술산업국(SASTIND)이 우주프로그램에 대한 정책, 규제, 연간 개발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할당하는 등 주도하고 있다. 중국 국가우주국은 민간 우주 정책ㆍ프로그램 및 국제협력을 담당하며 이를 보조한다. 중국 과학원(CAS)은 우주 과학 응용연구센터를 통해 과학위성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120개의 기관과 24개의 국영 기업을 운영한다. 실제 우주 기술 개발과 우주선ㆍ위성 제작 등은 중국항공우주기술공사(CASC)가 맡는다. 8개 연구개발(R&D) 기관과 11개 공기업, 12개 상장사를 보유한 대기업집단으로 18만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매출(2014년)은 1233억 인민폐(RMB)로 추정되는 어마 어마한 규모다.
◆미 항공우주국(NASA)
그래도 뭔가 께름칙하다. 러시아는 수도 없이 실패했고 미국도 여러 번 깨진 화성 착륙이었다. '마의 9분'을 극복한 노하우를 한 번에 깨우친 게 과연 스스로의 능력일까 의심이 생길 수 있다. 또 화성 탐사 로보 '주룽(Zhurong)'의 등장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자율주행능력 등 최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화성 탐사 로보를 중국이 느닷없이 만들어 내다니?
특히 미국 NASA의 반응은 특이했다. 화성 착륙에는 반응도 없더니, 주룽의 화성 표면 사진 전송에 난데없이 성명을 냈다. "화성에 있는 로봇 탐험가들의 국제적인 과학 공동체가 성장함에 따라, 미국과 세계는 주룽이 화성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낼 발견들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적인 과학 공동체(international scientific communty)'란다.
그동안 NASA는 중국 해커들의 끊임없는 작업 대상이었다. 2018년 말 미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은 미 해군ㆍNASA를 해킹한 혐의로 중국 해커집단 'APT10' 소속 해커 2명을 기소했다. 2012년에도 해커들이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보안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컴퓨터를 장악해 정보를 빼가는 등 농락 당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당시 조사 당국은 해커들이 중국에 위치한 IP를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8월에도 NASA 연구원인 중국계 교수가 중국 정부의 인재 채용 계획인 '천인계획'에 참여해 정보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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