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다툼 후 대리운전 기사 떠나자 음주운전
"긴급피난에 해당, 무죄"
대리운전 기사가 도로 한복판에 내려
술 취해 운전한 50대도 무죄
[아시아경제 이정윤 기자] 술을 마신 채 운전하더라도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잠시 운전대를 잡은 경우에는 처벌을 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6단독 손정연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지난 17일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6월 성동구의 한 노래방 앞 도로에서 건물 주차장까지 약 10m를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32%였다.
A씨는 대리운전 기사에게 '과속방지턱이 많은데 밟고 서고 밟고 서고 하시니까 천천히 가달라. 급하신 거 있으면 다른 사람 부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리운전 기사가 '출발지로 되돌아가겠다'고 해 말다툼이 발생했고 일행들이 이를 말렸다.
대리운전 기사는 말다툼 후 목적지인 노래방 건물이 아닌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운 뒤 떠났고 A씨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차량을 노래방 건물 주차장으로 이동시켰다. 대리운전 기사는 이러한 모습을 촬영해 A씨를 음주운전으로 신고했다.
손 판사는 "차량을 이동한 거리 등을 보면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발생하는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피고인이 운전한 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 상당한 이유가 있어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현행 형법 제22조 1항은 자신 또는 타인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가 신호 대기 중이던 도로 한복판에서 내려버리자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을 한 50대 남성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22단독 김병국 판사는 지난 2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B(5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는 지난 4월 인천 한 사거리 인근 도로에서 술에 취해 자신의 차량을 50m가량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대리운전 기사가 말다툼 끝에 신호 대기 중이던 도로에서 내려버리자 음주운전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차량은 편도 6차로 한 가운데 있었고 앞뒤로 여러 대의 차량이 정차돼 있었다.
대리운전 기사는 B씨가 차량을 몰아 도로 가장자리에 정차하자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재판에서 "당시 차량을 운전한 것은 위난을 피하기 위한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김 판사도 이를 인정했다.
지난 4월에도 대리운전 기사가 차를 도로 위에 놓고 떠나버리자 사고 방지를 위해 3m가량 음주운전을 한 3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운전 경로 때문에 다투던 대리운전 기사가 편도 1차로에 차를 버리고 가버려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으나 긴급피난으로 인정받았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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