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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테미스토클레스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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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테미스토클레스의 최후 테미스토클레스의 흉상 모습[이미지출처= 아테네 국립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nhmuseum.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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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고대 그리스 최고의 해군 사령관으로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궤멸시킨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에서 민족적 영웅으로 불린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말년에 숙적인 페르시아의 지방총독으로 생을 마감한 사실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해전이 끝나고 10년 뒤인 기원전 470년, 고향인 아테네를 등지고 페르시아에 의탁했고, 페르시아가 점령한 그리스 동부 마그네시아 지역의 총독직을 맡고 있다가 자연사했다. 인생의 전반부는 그리스 민족의 영웅이었지만, 후반부는 민족을 배반한 매국노로 그리스 전역에서 비난을 받았다.


그를 이런 두 얼굴의 영웅으로 만든 것은 고대 그리스의 현실정치였다. 그는 살라미스 해전 직후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델로스 동맹체제를 구축하고, 아테네가 그 맹주로서 그리스 전역에 세력을 확대해 페르시아의 재침공을 막을 힘을 기르자고 주장했다. 그의 방안은 향후 아테네의 숙적이 될 수 있는 스파르타 역시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적인 아리스테이데스를 비롯한 귀족세력들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제안대로 아테네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맹주로서 패권국가가 되면, 아테네의 군권을 쥐고 있는 테미스토클레스가 독재를 펴면서 민주정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민회를 설득해 그를 아테네에서 추방시키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정적들은 그가 페르시아와 결탁한 매국노라는 소문까지 흘렸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어머니가 페르시아의 트라키아 지역 출신이라는 것을 부각시켜 그는 순수한 아테네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아테네의 귀족들은 페르시아 전쟁을 거치며 영웅이 된 테미스토클레스의 자산이 전쟁 전보다 30배 이상 불어났다며 페르시아 방위를 명목으로 거둔 세금을 빼돌린 것이라 공격했다. 가뜩이나 방위 세금에 불만이 많던 아테네 시민들의 마음은 손쉽게 돌아섰다. 결국 그는 그리스 어느 도시국가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역적이 됐고, 페르시아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후대 그리스인들은 그의 일대기를 안타까워하며 최대한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쓴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페르시아의 벼슬아치로 죽었다고 차마 쓸 수 없어 그의 죽음을 미화시켰다. 페르시아 황제가 그를 그리스 침공 선봉장으로 임명하자 음독자살했다며 그가 끝까지 민족을 잊지 않은 영웅으로 죽었다고 기록했다. 현실정치가 망가뜨린 영웅의 공로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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