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풍 안 되는 '쿨울' 소재, 법원행정처 교체 예산 요청

[아시아경제 강나훔 기자] 본격적으로 시작된 올 여름 무더위에도 더운 소재의 근무복을 피할길 없어 고통 받는 직업이 있다. 방열복의 제철소 근로자도, 방역복의 방역 공무원도 아닌 바로 법관들 이야기다.
법관의 법복은 20년째 같은 소재, 같은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는데 소재 특성상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무더운 여름철 장시간 재판에 임해야 하는 법관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에 최근 법원행정처가 새로운 소재의 법복을 위해 행정당국에 예산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20년만에 법관 법복에도 변화가 일지 주목된다.
9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법관들은 지난 1998년 법복 계량사업에 따라 디자인된 지금의 쿨울(cool wool)소재의 사계절용 법복을 법정에 들어설때마다 줄곧 입어왔다. 쿨울 소재는 탄성이 높아 구김이 쉽게 펴지고 천연섬유로 원단이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여름철 착용 시 덥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대책으로 여름철 법정 내 냉방(26℃ 이상 유지)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법정 내 온도가 높은 상황에서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 법복을 입은 채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법관들의 고충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가고 있다.
수도권 내 한 법원에서 근무하는 A 판사는 "사실심 충실화, 구술심리, 공판중심주의 강화, 증인 수 증가 등으로 법관들이 법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예전보다 크게 증가했다"며 "온종일 재판에 임하다보면 어느새 법복 안에 입은 옷이 땀으로 범벅되곤 한다"고 토로했다.
반면, 검사의 법복은 쿨울이 아닌 트리아세테이트(triacetate) 소재여서 고충이 덜하다. 이 소재는 모시와 가장 유사한 촉감으로 통기성이 우수하고, 쿨울과 비교하면 착용 시 가볍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A 판사는 "선배 중 한 분은 더위를 못이긴 나머지 법관 법복 디자인은 그대로 두고 재질만 검사 법복과 같은 것으로 따로 주문해 입은 것을 본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섬유기술 발전에 대응해 법관의 법복 소재를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20여년 동안 동일한 소재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품위'와 '부족한 예산'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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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지금까지 법복 소재 교체가 추상적인 차원에서 검토된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까지 이어진 적은 없다"며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통기성이 좋은 트리아세테이트 소재는 기존 소재보다 가격이 비싼 반면에 외관상으로 고급스러움이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다만, 법원행정처는 판사들 사이에서 더위로 인한 불만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올해 법관 법복을 기존 쿨울 소재에서 검사 법복과 같은 트리아세테이트 소재로 교체하기 위한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예산이 확보되면 예산 범위 내에서 어떻게 법복을 교체할지에 대한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법복의 소재만 교체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고, 지금의 디자인을 바꿀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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