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포트 지역 수출용기지 전환해 터닝포인트
오클라호마 가필드카운티엔 SK이노 광구 눈길
개발사업에 세계각국 기업들 지분참여도 활발
매장량 세계 4위로 시장진입 쉬워…운송비는 단점
[휴스턴(텍사스), 털사(오클라호마) = 김은별 특파원] "건전한 에너지 정책은 미국이 광대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트럼프 정부는 수백만명의 미국인에게 일자리를 가져다주기 위해 셰일 오일과 가스혁명을 적극 받아들이겠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트럼프 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에너지 계획(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 중 일부다. 에너지 분야 중 가장 공들이고 있는 것이 셰일가스 수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 순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셰일에너지 카드를 활용해 선물보따리를 챙겼다. 일본은 미국산 셰일가스 판로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1조엔(약 10조원) 펀드를 내놓았고, 시노펙(중국석화)은 약 70억달러를 투자해 송유관을 건설하고, 알래스카에서 미국 회사와 공동으로 천연가스전을 개발하기로 했다. 텍사스 퍼미안분지의 셰일 오일을 걸프만으로 보내기위한 송유관, 초대형유조선을 위한 항만 터미널 건설에 시노펙이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 환영 만찬에 기업인들이 참여해 지난 문재인 대통령 방미 당시 결정한 에너지 분야 투자를 재확인했다. SK그룹은 5년간 에너지 분야에 최대 44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6월엔 미국 GEㆍ콘티넨탈리소스와 셰일가스 E&P(탐사ㆍ생산) 분야 투자 등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SK는 현재 오클라호마, 텍사스 등에서 셰일가스 개발과 LNG 생산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셰일가스는 원유가 처음 생성되는 근원암인 셰일(shale) 암반층에 갇혀 있는 비전통(언컨벤셔널ㆍUnconventional) 천연가스를 말한다. 가스와 오일이 섞여 있어 일반적으로 셰일가스로 부른다. 기존 천연가스보다 더 깊은 2~4㎞에 위치해 있는데다, 암석층의 미세한 틈에 갇혀 있어 이곳에서 기름과 가스를 뽑아내는 일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공법 연구가 시작되면서 생산이 늘어났다. 기존 석유 생산을 독점하던 중동 국가에서 원유 생산량을 통제해 기름값을 계속 올려가자, 셰일을 추출해 낼 방법을 모색한 것. 셰일 개발은 3~4년 전만 해도 배럴당 50~70달러는 돼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었지만 이젠 유가가 40달러 정도여도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향상됐다.
◆셰일가스로 터닝포인트 맞은 프리포트LNG=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휴스턴. 휴스턴에서 차로 한 시간 가량 남쪽으로 달리자 멕시코만에 위치한 '프리포트(Freeport)' 지역이 나타났다. 1939년 다우케미컬이 이곳에 공장을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지역이다. 5.6㎞에 달하는 해변을 끼고 있고, 멕시코만과 맞닿아 있어 에너지사업을 하기에 용이하다.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붐이 일면서 이 지역은 더욱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생산된 셰일가스를 바로 액화시켜 수출하기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는 SCOOP(South Central Oklahoma Oil Province), STACK(Sooner Trend, Anadarko, Canadian and Kingfisher) 등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지역에서 생산된 가스도 파이프를 통해 수송, 수출까지 가능하다.
프리포트에서도 최남단으로 향하면 멕시코만 퀸타나 지역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텍사스 총기난사 사건으로 미국 성조기와 텍사스 주기가 조기로 바꿔 걸려있었고, 멀리 보이는 바다와 야자수들로 멕시코만에 다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무렵, 거대한 프리포트LNG 액화터미널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산 셰일가스 수출 전초기지다.
"엄청나게 큰 냉장고가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각 시설에 대형 모터와 컴프레서, 열교환기가 있다고 보면 되는 거죠."
프리포트 터미널은 한 기당 연 440만톤의 천연가스를 액화할 수 있는 액화설비 총 3개로 구성돼 있다. 액화설비는 수출용 터미널의 핵심설비로 영하 162도의 초저온, 초고압 환경에 기체상태인 천연가스를 노출시켜 액체로 바꾸는 설비다.
이 터미널은 수입용 터미널로 설계됐다. 수입한 액체 상태의 LNG를 기화시켜 미국 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셰일가스 개발 붐이 일자, 2008년 이 회사는 전략을 180도 바꿔 수출용 기지 건설로 방향을 틀었다.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60여년간 천연가스 수입국이었던 미국은 2018년부터 수출량이 수입량을 넘어서는 '순수출국' 반열에 오를 전망이다. 2013년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1975년 이후 40여년간 이어져 오던 에너지(원유) 금수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부 수출 프로젝트를 허용했다. 프리포트를 비롯해 루이지애나주 사빈패스와 카메론, 메릴랜드주 코브포인트 등 네 곳이 수출 기지로 지정됐다.
프리포트LNG의 설비 3기 중 첫 번째 설비는 오사카가스와 현재 JERA(추부전력), 두 번째 설비는 BP에너지, 3번째 설비는 국내 업체인 SK E&S와 도시바가 반반씩 사용계약을 체결했다. SK E&S가 계약을 체결한 3기는 2019년 하반기 상업운전을 목표로 막바지 공정이 한창이었다. SK E&S는 2019년부터 20년간 연 220만톤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액화ㆍ반출할 기반을 마련했다.
마이클 플레처 프리포트LNG 건설담당 매니저는 "1기에서 3기로 공정이 진행될수록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며 "상업운전 결과를 살펴본 후 4기까지 확장하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릭 페냐 프리포트LNG 유지보수관리자는 "아직까지 중국 기업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참여하게 된다면 투자자(은행)들이 매우 반가워 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셰일가스의 강점 '유연함'=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 7일 발간한 '2017년 세계 원유전망 보고서'에서 북미 셰일 생산이 2021년 하루 750만 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1년 전보다 56% 증가한 수치다. OPEC은 셰일 오일 생산이 2025년 이후 절정에 달하고 2030년 정도부터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했다. 올해 북미 셰일오일 생산량은 하루 510만 배럴로 전망됐다.
지난 8일, 셰일 생산이 한창인 오클라호마 가필드카운티로 향했다. 이곳에는 국내기업 중 유일하게 해외광구에서 광구를 직접 운영, 생산까지 하는 SK이노베이션의 광구가 자리잡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로 현지에서 광구를 운영하는 SK플리머스가 소유한 광구만 해도 서울시 면적의 38%(4만2000에이커)에 달한다. SK플리머스가 이곳에서는 '새내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108개의 유정에서 하루 2700 boe(셰일오일 광구에서 석유추출이 가능한 규모)를 생산해내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메이저 기업들이 하루에 생산하는 양이 두세배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미국 셰일광구의 엄청난 규모를 예상해 볼 수 있다. 개발사업에 대한 지분참여도 활발하다. SK E&S는 미국의 컨티넨탈리소스로부터 오클라호마주 우드포드 셰일가스전 지분을 인수해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셰일가스 매장량은 세계 4위 규모지만, 생산되는 셰일가스의 91%가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미국 셰일가스의 강점은 '유연함'이다. 생산을 시작하게 되면 해당되는 섹션(땅)의 권리를 계속 보유할 수 있고, 유가 상황에 따라 시추를 추가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광물소유권을 토지소유자 개인이 갖고 있어 시장진입이 쉽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안형진 SK플리머스 부장은 "땅 주인의 광물권을 온전히 인전하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고 전했다.
미국산 LNG의 경우 도착지 제한규정, 의무인수규정 등 구매자에게 불리한 불공정 계약 관행이 훨씬 유연하거나 아예 없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장거리 운송비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문제다. 업계에서 '수입국 다변화 운임료 환급제도'를 LNG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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