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농성장에서 본지와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 나눠
'국정농단 폭로 아이콘'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시민운동가 변신..."나는 대한민국 최고 '꼴통'"
"비정규직 폐지 위해 투쟁"...현실정치 참여 의사 밝혀
"돈 없어 운동선수 꿈 포기하는 아이들 돕고 싶어 대한체육장학회 설립 추진"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정준영 기자]‘대한민국 최고 꼴통’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는 노승일(42)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4일 아시아경제와 만나 “현실정치에 대한 도전의 꿈은 항상 갖고 있었다”며 “대학 때 총학생회장 하면서 사회를 알았고, 정치를 관심 있게 지켜봐왔다”고 말했다.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뜻을 내비친 셈이다.
그는 지난 2일부터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노상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그는 “국회에서 비정규직 폐지 법안을 발의해야 단식을 풀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부장은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증인으로 국정농단 청문회에 나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전횡과 더블루K가 K스포츠재단을 좌지우지했다는 것 등을 폭로하며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이랬던 그가 왜 거리로 나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게 됐을까. 다음은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노 전 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갑자기 광화문 길거리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예전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 증인으로 나갔을 때 어떤 노조원을 만났어요. 얘기 나누는 중에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삼성에 입사했다가 부당해고 당해 몸도 가정도 망가지신 분이었어요. 그렇더라도 목숨 걸고 단식 투쟁하기란 참 어려운데. 그래서 그분을 찾아뵀어요. 제가 간곡하게 단식 중단을 부탁드렸어요. 그러나 그분은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으니 여기서 세상을 마무리 하려 한다’며 옆에 관까지 짜놓고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방법을 찾아보자, 옆에서 도와드릴 테니 단식 풀고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했던 거예요.
-원래부터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에 관심 있었나?
▲제가 비정규직을 해봤으니까요. 저는 첫 사회생활을 2002년 증권회사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당시에 체육대생이 어떻게 증권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겠어요. 그때만 해도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굉장히 노동시장이 얼어붙어 있던 시기였어요. 당시 제 월급 100만원에 세금을 떼면 88만원이 남았습니다. 그때 제가 ‘88만원 세대’였던 거죠. 생활비도 생활비지만 영업사원이다 보니 손님들 커피도 사야하고 돈 나갈 데가 많았어요. 늘어나는 건 빚 밖에 없었습니다. 감당이 안 되니 현금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안 되면 다른 카드 만들어서 돌려막기 하고.
-이번 단식을 계기로 시민운동을 이어갈 생각인가?
▲제가 여기서 단식을 하는 이유는 국회가 비정규직 폐지 법안을 발의토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폐지하겠다고 하면 단식을 풀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이 800만명인데, 향후 1000만인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할 생각입니다.
-비정규직 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투쟁한다는 말인가? 하루아침에 폐지되긴 쉽지 않을 텐데
▲끝까지 투쟁할 생각입니다. 물론 20년 이상 된 제도가 하루아침에 바뀌긴 힘들겠죠.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20년 이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풀지 못했던 겁니다. 이참에 바꿔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없애겠다고 공약했는데, 실현될 거라 보나?
▲꼭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뜻은 확고하신데, 이것을 만들어줘야 하는 건 국회입니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가 돼야 진행이 되니까요. 이를 위해 국민이 단결해서 밀어붙여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실정치 참여할 생각도 있나.
▲현실정치 도전의 꿈은 항상 갖고 있었죠. 총학생회장 하는 이유가 나름 학교서 학우들을 위해 앞장서보겠단 뜻에서 하잖아요. 총학생회장 하면서 사회를 알았고, 사회를 알면서 정치 흐름이나 이런 것들 관심 있게 봐왔습니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도 한 번 정치 해볼까?’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은 다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평소 조언을 많이 해주나?
▲많이 조언해주십니다. 윤 의원은 특히 노동운동가 출신이시다 보니 많이 신경 써주세요. 이번에도 두 분 다 농성장에 다녀가셨습니다.
-대한청소년체육회 설립위원장도 맡았던데
▲돈 없어서 운동 못하는 애들이 많아요. 초등학생들이 운동하려면 부모 뒷받침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운동용품 사야하고 코치도 있어야죠. 코치비가 한 달에 30만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한 달 30만원 코치비 주는 게 1년이면 360만원으로 부담되는 가정이 있어요. 또 아이를 잘 먹여야 하고요. 그럼 감당 안 돼요. 아이는 운동을 하고 싶은데 운동을 포기시키는 거죠. 그 아이는 ‘우리 집이 가난해서’라며 체념할 수 있겠지만, 부모 가슴은 쫙 찢어지는 거죠. 그런 아이들 도와주려고요.
-K스포츠재단 있으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겪었는데 대한청소년체육회 한다고 하면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맞아요. 그런 시선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누가 욕하는 시선으로 보더라도 운동선수 꿈을 포기하는 아이들을 외면할 순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
▲안민석 의원님이 책을 냈잖아요. 제가 안 의원 북토크 게스트로 다니면서 하는 말이 ‘대한민국 최고 꼴통 노승일입니다’예요. 계산하지 않고 국정농단에 도움 다 드렸다고. 후폭풍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거 한 번 고민하잖아요? 그럼 답이 없어요.(웃음)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정준영 기자 labri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