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형편상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낮에는 은행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녔다. 우연한 기회에 공무원 시험으로 눈을 돌렸고, 고시에 합격하고서야 은행에 사표를 냈다. 공직에 있으면서 서울대에서 석사를 하고, 미국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대학에서 박사과정 공부까지 마쳤다."
'고졸 신화'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아주대 총장)의 이야기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소년가장 출신으로 끊임 없이 배우고 도전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이제 우리 경제를 이끌 경제수장의 최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노력을 높이사는 표현이건만 어딘가 이상하다. 엄연히 대학, 석사, 박사까지 한 김 후보자에게 '고졸'이라는 꼬리표가 과연 응당할까?
되짚어보면 40여년 전 김 후보자의 학업 과정은 요즘 직업교육에서 강조하는 '선(先)취업 후(後)진학'의 모범적인 예다. 정부와 각 대학에서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취업 후 직장에 다니다 자신의 업무와 적성에 맞는 고등교육 과정을 선택해 역량을 높이고 학위도 받게 한다는 취지로 별도의 재직자특별전형과 재교육형 계약학과, 평생교육단과대학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잦은 야근이나 현장근무 일정상 저녁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게 많은 재직자들의 고충이다. 무엇보다 더 힘든 건 그런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주변의 인식이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며 대학에 다니고 있는 20대 청년 A씨는 "회사 상사가 '대학 졸업장 따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려 하느냐'고 핀잔을 줄 때나 동료 직원들이 '그래 봤자 회사에서 대졸입사자 대우 못받는다'고 할 때마다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재직자 B씨는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대학을 왔다"고 토로했다. 전교권 성적으로 특성화고를 졸업할 때만 해도 당당했는데, 사내에서 '일 잘하는 고졸 입사자'라는 빈정거림에 서러움을 느껴 다시 월급을 쪼개 대학 등록금을 내고, 잠을 줄이며 대학에 다니게 됐다. 그는 "고교 선생님과 부모님은 아니라고 했지만 현실은 학벌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고졸자의 취업률은 조금 높아졌을지 몰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물며 호봉과 승진에서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공무원마저도 특성화고 졸업자전형으로 당당히 합격해 근무하면서도 다시 야간대학을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A씨는 이렇게 되물었다. "여전히 고졸 신화가 언급되는 걸 보고 우리사회가 아직도 학벌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분들이 높은 자리에 많이 발탁돼야 그나마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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