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즐겨 쓰는 전략 중 하나가 '하이 볼(high ball)' 이다. 극단적인 언사로 협상 상대방을 위축시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전략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재벌 저격수' 두 명을 경제라인에 전면 배치하며 일종의 하이볼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모두 재벌개혁을 외치는 강한 개혁적 성향의 경제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정권 초기 인사를 통해 재벌개혁 여론을 조성하고, 재벌들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장 실장은 2006년 이른바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를 이끌며 기업지배구조 개선 운동을 주도했다. 소액주주로서 주주총회에 참석해 대기업의 경영을 비판한 것은 물론, '한국 자본주의'ㆍ'왜 분노해야 하는가' 등의 저서를 통해서도 재벌에 치우친 한국 경제의 불평등을 지적했다.
특히 이번 정부에서 부활한 정책실장은 경제ㆍ사회ㆍ일자리 등 국정 대부분의 어젠다를 총괄ㆍ조율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재벌개혁 대표주자인 장 교수가 정책실장이 된 것 자체가 대기업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 후보자도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 장 실장과 함께 재벌개혁 운동을 이끌어 온 경제인사다. 특히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4대 그룹의 조사를 맡았던 '공정위의 중수부' 조사국도 이번 정부에서 기업집단국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장 실장과 김 후보자를 동시에 주요 경제라인에 포진시킨 것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권의 강한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10대 공약 중 하나로 '공정한 대한민국'을 꼽으며 "소수 재벌권력에 경제력이 집중돼 다수 국민의 소외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장 실장과 김 후보자가 큰 그림을 그리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실행단계에서 총대를 멜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초기부터 너무 강경한 개혁 기조를 내세우다간 대기업과의 관계가 아예 깨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자리 창출 등에서 대기업과 협력해야만 하는 정부도 이를 의식했는지, '재벌 때려잡기'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장 실장은 "재벌개혁에는 '두들겨 팬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고, 김 후보자는 "재벌을 해체하자는 뜻이 아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잇단 재벌개혁 인사의 경제라인 기용으로 인해 재계의 긴장감은 한껏 높아진 상태다. 특히 새 정부의 재벌개혁이 고용과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걱정어린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두들겨 패지 않겠다'는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전봉걸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가 인사를 통해) 재벌개혁을 많이 이야기하면서, 재벌 쪽에서 우려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예전처럼 (재벌개혁을) 강하게 나가기 보다는 재벌은 인정하되, 부정적인 효과를 막는 규제로 간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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