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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 40]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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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삼년 만에 여길 왔습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찾던 공원인데, 그렇게나 오랫동안 발길을 똑 끊었었지요. 그날 이후의 일입니다. 이 근처 단골식당도 통 다니질 못했습니다. 이곳엘 오자면, 그 학교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아직도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학교.


제 일터에서 이십여 분 걸으면 그곳입니다. 거기서 한 굽이를 더 돌면 이 공원이지요. 초상집을 지나 밥 먹으러 가는 일이 죄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수백의 목숨을 잃은 교문과 학교건물을 보기가 두려웠습니다. 공원길도 싫어졌습니다. 여기에 합동분향소가 세워질 무렵이었습니다.

[윤제림의 행인일기 40]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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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이쪽 출입은 하지 않게 되었지요. 슬픔을 곱씹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비겁한 선택이었지요. 현실을 회피하고 아픈 장면을 애써 외면하려 한 것입니다. 이웃 동네 어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거리 곳곳에 드리워진 죽음의 무늬를 감지할 때마다 온몸이 떨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사고 직후, 안산 올림픽 기념관 임시 분향소에 다녀온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뉴스나 보면서 분개하고, 가방이나 핸드폰에 노란 리본을 붙이고 다니는 것쯤으로 면책의 빌미를 삼으려 했습니다.

날마다 그들 앞에 꽃을 바치고, 기도하는 사람들에 부끄럼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가족들을 위로하고 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면서 삼년을 보냈습니다. 어서 이 참혹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살아있는 자들의 죄책감이 흐릿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세월이 약'이란 속담의 리얼리티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고, 통증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어른들의 자괴감은 깊어만 가고,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은 점점 얕아져갑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모두가 인정하는 '탈상(脫喪)'의 시간이 올까요. 얼마나 더 '가만히' 있어야 속 시원히 밝혀질까요.


안산 화랑공원. 공원이 많은 이 도시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입니다. 갈대밭이 어우러진 호수를 중심으로 철새와 텃새가 고루 모여들어 사철 아름답습니다. 경기도 미술관의 건축미가 인공의 격조까지 더해줍니다. '와-스타디움'(얼마나 인상적인 이름인지요)이 짝을 이뤄서 이 넓은 들판 풍경을 심심치 않게 합니다.


미술관 주변엔 갖가지 조각과 설치미술 작품이 시선을 잡아끌지요. 저는 최평곤 씨의 '가족'을 제일 좋아합니다. 대나무를 쪼개어 이리저리 엮어 만든 거대한 인간 형상입니다. 동학농민군들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공주 우금치, 임진각 평화누리 등에서도 만날 수 있는 거대한 군상(群像)입니다.


꿈꾸는 시선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어머니로 보이는 인물상의 품에는 아이가 안겨있습니다. 어머니의 양옆에는 두 아이가 자랑처럼 서 있습니다. 하나만 빠져도 가족이란 제목과 거리감이 느껴질 것입니다. 기둥 하나가 없어지는 순간, 그 하나의 부재(不在)는 집의 붕괴로 이어지지요.


문득, 착시(錯視)가 일어납니다.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안고 있고 곁의 두 아이는 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터무니없는 생각도 불쑥 솟아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으로 겹쳐지면서, 화랑 '관창'의 시신을 안고 있는 신라 장군 '품일'이 보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공원이름과 세월호 참극이 한데 엉겨서 일어난 망상일 것입니다.


봄꽃이 한창입니다. 온갖 꽃들이 한쪽에서는 지고 한쪽에서는 피고 있습니다. 아니, 순서도 없이 다퉈서 피고 집니다. 이 강산 봄의 길이가 자꾸 짧아져가는 것을 그들도 아는 모양입니다. 꽃들의 세상에도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예절쯤은 곧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이 고장 꽃들도 4월 제주도의 그것들처럼, 기막힌 슬픔의 언어들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개나리꽃은 수천수만의 노란 리본입니다. 진달래는 엄마를 부르는 어린 것들의 붉은 입술입니다. 조팝꽃은 아이들 돌아오길 기다려 갓 지어낸 밥입니다. 라일락의 강렬한 향기는 여학생들이 배워가던 화장품 내음입니다.


우리들의 기다림은 언제나 끝이 날까요. 여기서도 멀지 않은 곳에 사셨던, 성호 이익(李瀷) 선생의 시집을 펴니 이런 시('候人')가 보입니다. "기약이 없었다면 기다리지 않겠지만/만날 기약 하고 보니 기다리기 어렵구나/그대 마음 또한 설레이리니/기다리는 사이에 해가 저무네"


큰 선비가 조급증을 숨기지 못하는데, 필부(匹夫)가 어찌 점잔을 빼겠습니까. 제가 하고픈 얘기를 당신께서 해주시니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오래 기다리니 다시 짜증나고/시간이 지나가니 문득 화가 나네/어디쯤 왔을까 점쳐 보나니/길에 있는 사람도 내 마음과 같으리"


[윤제림의 행인일기 40]안산에서 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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