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아마도 가장 중대한 순간-최소한 몇 개의 순간 중의 하나-으로 기록될 한 주다. ‘대통령직 탄핵 피소추인’ 박근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인용 여부 결정일이 오는 목요일(9일)이나 금요일(10일)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한국 사회는 박빙(薄氷) 위를 걷는 긴장도 최고치의 일주일을 보내게 됐다.
헌재 판결에 앞서 오늘(6일) 오후엔 특검 수사 결과가 발표된다. 특검 발표에 이어 헌재의 판단이 내려지는 것은 논리적인 순서를 갖춘 듯하다. 그러나 헌재의 판단은 검찰처럼 불법성 여부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대통령 자격 여부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른 것이다. 즉 헌재의 결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 나라의 최고권력자로서의 직책을 수행할 만한 도덕성과 지적 역량, 판단력, 통솔력을 갖췄느냐는 것을, ‘최소한의 수준’으로라도 과연 갖췄느냐는 것을 심의하는 것이다.
헌재의 인용 여부에 대해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단호하게 요구하는 것은 물론 인용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분위기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 주변을 100만명이 뒤덮으면서 누적 참여 인원 1500만명에 이른 촛불의 노도(怒濤)가 보여주듯 ‘박근혜의 대통령 자격’에 대한 한국사회 절대 다수의 판단은 분명해진 듯하다. 그것은 시위의 참여 숫자로서만이 아니다. 지난 4개월간 언론과 특검을 통해 연일 드러난 막장극의 백태(百態)가 보여주듯 ‘박근혜와 그 주변인들’이 보여준 온갖 미달과 부실과 결핍은 최고 지도자(와 국가경영권력)로서의 자격은커녕 대통령 자신이 즐겨 쓴 표현처럼 도저히 ‘정상적’인 것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비루한 ‘참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어제(5일) 박 대통령 대리인 측이 헌재에 제출한 한 동영상만 해도 그 참상을 다시 한 번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세월호 사고 당일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중앙재해대책본부 방문이 지연됐다는 지적에 대한 반박자료라며 동영상을 내놓으면서 차량이 중대본 정문으로 돌진해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금세 승용차 한 대를 견인하는 장면이라는 게 밝혀졌고, 대리인 측은 허둥지둥 이를 다시 주어 담았다. 대통령과 그 대리인이 그간 보여 온 행태가 내내 이런 식이었다. 상대방을 묶으려던 줄이 자기 자신을 묶는 포승줄이 돼버리고 마는 식이었다.
그 ‘비정상’과 ‘포승줄’은 지금 한국 사회를 결박하고 있다. 최근의 사드 배치로 인한 국의 보복 공세 사태만 보더라도 애초에 사드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부터 배치 결정에 대한 찬반을 떠나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의 부실한 결정 과정도 그렇거니와,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거듭된 공언이 결국 아무런 대책이 없는 무능과 불능의 극치를 가리는 허세였음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이런 정부에 나라의 운영을 더 맡겨둬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감을 키우고 있다. 이제 그것은 공분을 넘어 위기감, 국가 생존 위협의 절체절명 의식인 것이다.
헌재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탄핵을 인용해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야겠다는 판단을 할 것인가. 아니면 탄핵을 기각해 피소추인에게 직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나라의 장래에 필요하다고 볼 것인가. 헌재의 시험이자 한국사회의 시험대다. 헌법의 최후 보루라는 소명을 부여받은 헌재 재판관 8인의 결정에 한국호의 장래가 크게 달려 있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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