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경찰, 용의자 6명 중 3명 체포
제3국 국적…"장난으로 범행 가담"
의외 진술에 수사 더 미궁 속으로
부검·수사 결과에 따라 파장 클듯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 사건이 벌어진 말레이시아의 현지 경찰이 용의자 6명 중 3명을 범행 사흘 만에 체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고도로 훈련된 북한의 공작원일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제3의 국적으로 드러났고,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용의자들이 체포되면서 수사가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베르나마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날 오전 2시께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된 두 번째 여성 용의자를 체포했다. 이 여성은 인도네시아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여권상 이름은 시티 아이샤(Siti Aishah), 생년월일은 1992년 2월11일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전날엔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여성(도안 티 흐엉·Doan Thi Huong)이 체포됐다.
두 여성은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제2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독살하는 범행 장면이 공항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 포착돼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날 두 번째 체포 여성의 남자친구인 말레이시아 남성도 추가로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남성이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추적 중이던 추가 남성 용의자 4명 중 1명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용의자들을 발 빠르게 체포했지만, 수사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15일 경찰에 붙잡힌 도안 티 흐엉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은 단순히 '장난'인 줄 알고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여성친구 1명과 함께 말레이시아 여행을 가던 중 동행 남성 4명이 공항 승객을 상대로 장난을 치자고 제안해 따랐다는 것이다. 그는 대상이 김정남인 줄도 몰랐다고 했다.
이들의 여권에 적힌 국적도 의심 대상이다. 공작원들이 제3국 여권을 소지하는 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1987년 대한항공(KAL) 여객기 폭파사건의 주범인) 옛날 김현희도 일본 국적의 위조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며 "1983년 미얀마(구 버마) 아웅산 폭파 테러 때 붙잡힌 북한 테러요원도 외국 위조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독극물이 들어 있는 도구를 활용해 김정남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공항 CCTV에 자신을 정면으로 노출했을 뿐 아니라 범행 이틀 만에 현장에 다시 나타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더욱이 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단순 장난이라는 진출은 말레이시아 경찰 뿐 아니라 관련국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남은 용의자들에 대한 빠른 체포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외교가에선 말레이시아 경찰이 남한과 북한, 중국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남의 부검 뿐 아니라 수사를 하는데 시간이 상당기간 소요되고 결과를 단정해서 공표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복잡한 외교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날 살해된 북한 국적 여권의 남성이 김정남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정확한 사인 규명은 밝히지 않았다. 현재 김정은이 독침이나 스프레이로 분사된 독극물 또는 독액이 묻은 헝겊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며 독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전혀 다른 수사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친북 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어 결과에 따라 논란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
한편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날 북한의 요청에 따라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인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건 발생 직후 부검 없이 시신을 즉각 송환해달라는 북측의 요구를 말레이시아 정부가 거절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부총리는 이날 시신인도 방침을 밝히며 "모든 국가와의 양자 관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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