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0일 4대 재벌 집중개혁을 담은 재벌개혁방안의 큰 틀을 공개하자 재계는 여러 부분에서 오해와 왜곡의 소지가 있으며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포럼에 참석,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재벌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문 전 대표는 삼성의 예를 들면서 4대 그룹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재계 서열상 4대 그룹은 삼성과 현대차그룹, SK와 LG이지만 LG대신 롯데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들은 문 전 대표가 주장한 방안들을 두고 "다수가 과거에도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사안이어서 국회에서 입법을 강행해서는 안 되는 사안들"이라면서 "사내유보금의 활용도 유보금의 개념을 두고서도 이견이 커왔던만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정부가 영향력 행사 가능성"
문 전 대표는 우선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화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국내 상장사 주식을 보유ㆍ운용하는 모든 기관투자자가 보유하거나 운용중인 주식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도록 하는 연성규범으로 정부당국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는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지침 및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해야한다.
상장사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정부가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를 활용해 상장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미 도입한 영국, 일본은 '원칙'만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다중소송제 등 상법개정안,"사기업에 견제와 균형 원리적용해선 안돼"
문 전 대표는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추진한 상법개정안을 담은 '경제민주화법'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는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 서면투표 등을 도입하고 노동자 추천 이사제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전날 새누리당 주최 토론회에서도 찬반이 오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중투표제도 의무화 ▲사외이사 선임제한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표소송제도 개편 ▲전자투표제도 단계적 의무화 ▲자기주식 처분제한 ▲보수위원회 설치 ▲유지 청구권제 도입 등 8가지 경제민주화 조항에 모두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김정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사기업의 이사회에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최근의 탄핵정국을 반기업 정서로 연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추천이사제, "심각한 부작용 초래 우려"
경영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서울시가 도입한 비슷한 내용의 근로자이사제를 반대한 바 있다. 경총은 "우리나라 경제체계나 현실을 도외시한 제도로 심각한 부작용과 피해가 우려되고 시장경제원칙에도 위배된다"면서 "근로자 이사와 경영진의 의견 대립으로 이사회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되고 손해는 주주들이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내유보금에 특단의 대책,"남아도는 돈 아냐…이중과세 우려"
문 전 대표는 "대기업에 쌓여있는 700조원 상당의 사내유보금을 중소기업과 가계로 흐르게 하고, 재벌의 갑질 횡포를 예방하기 위한 특단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사내유보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과세를 추진하는 입법들이 이뤄졌다가 대부분 폐기됐다. 대신 정부는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세제를 도입해 신규 유보금을 임금인상이나 배당, 투자 등에 사용하도록 하고 일정 비율이 넘는 금액에 대해서는 과세하기로 했다.
경제계는 사내유보금의 개념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한다.사내 유보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에서 배당 등을 하고 남은 이익잉여금과 자본거래를 통해 생긴 차익인 자본잉여금을 합친 회계상 개념이다. 상당 부분은 이미 투자 자산으로 전환되는 등 경영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사내유보금을 남는 돈으로 보는 것인데, 실상 사내유보금은 미래에 사용할 돈이지 남아도는 돈이 아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6회계연도 개별 반기 보고서상 10대 그룹 상장사의 사내 유보금은 2016년 6월 말 기준 550조원이다. 이 가운데 10대 그룹 상장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86조1000억원에 불과하다. 재계는 만약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할 경우 이중과세,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 국부유출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이 많은 대기업 대부분의 발행주식이 외국인 소유 지분 40%대를 초과한다는 점에서 국부의 해외유출 정도가 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