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사건 중대성 감안하면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워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법재판소가 관련 수사기록을 넘겨달라고 검찰 및 박영수 특별검사에 요청했으나 실행이 될 지는 불투명하다. 현재로서는 수사기록이 헌재로 넘어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높다. 절차적 원칙이나 함의가 간단하지 않아서다.
검찰과 특검은 16일 헌재의 요구서를 바탕으로 수사기록 송부가 가능한 지를 검토 중이다. 헌재는 전날 재판관회의를 통해 수명재판관 명의로 관련 기록송부 요구 의사를 양 측에 전달했다. 수명재판관은 헌재 소장의 명을 받아 특정 소송행위를 전담하는 재판관을 일컫는다. 강일원ㆍ이정미ㆍ이진성 등 수명재판관 3명은 탄핵심판 준비절차 진행을 전담하고 있다.
현행 헌재법은 심판에 필요한 경우 다른 국가기관에 관련 기록을 송부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재판이나 소추, 또는 범죄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해서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 검찰은 사건을 특검에 넘기면서 수사를 마쳤고, 특검은 아직 수사 준비중일 뿐 본격 수사에 돌입하지 않았으니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헌재의 논리다.
검찰이 수사를 접고 공소유지 준비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헌재의 요구는 사실상 특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특검 수사준비 기간은 오는 20일 까지다. 특검은 이 날을 전후로 서울 대치동 사무실 현판식을 열고 공식 수사개시를 선언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헌재의 묘수'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이는 형식논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특검은 수사준비 기간에도 수사는 가능하다는 원칙 아래 출범 이후 꾸준히 기초수사를 진행해왔다. 심지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도 단행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이런 탓에 특검의 고민이 깊어지는 눈치다. 헌재 심판사건의 중대성을 생각하면 마냥 외면하기도, 실질을 무시하고 덜컥 넘겨주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검 관계자들은 "(가부를) 빨리 결정해야 하지 않겠나. 오늘(16일) 논의를 하긴 한다"면서도 "(넘겨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헌재가 심판을 '준 형사재판' 수준으로 이끌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탄핵심판이 일반 형사재판 원리를 준용하긴 하지만 유무죄를 다투는 건 아니라서 형사재판처럼 사유(혐의)에 대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진 않는다.
다수의 헌법심판 사건에 참여했던 A변호사는 "양이 어마어마할 텐데, 헌재가 관련 수사기록을 모두 검토한다면 그 자체로 심판은 매우 길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헌재 심판의 목적이나 취지와는 다른 방향이라는 지적이 무리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기록이 피조사자이자 피의자인 박 대통령에게 넘어갈 우려도 제기된다. 현행 규정상 심판(재판) 당사자는 사건과 관련한 서류나 증거자료 등을 열람ㆍ복사할 수 있다. A변호사는 "재판부가 모든 자료에 대한 열람ㆍ복사를 허용하진 않겠지만 원칙적으로 보장되는 당사자의 권한이라서 우려는 상존한다"면서 "수험생이 시험지를 미리 보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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