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해외에서 뭐라고 하겠어요. 한국은 시장금리도 정부에서 정하냐고 하지 않겠어요? 한국 금융을 정말 우간다 수준으로 볼겁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산정 체계 개편을 추진하면서 각 은행들은 “매우 격앙돼 있다”고 한다.
2012년 10월에 당국과 은행권이 공동으로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마련하면서 금리 산정의 원칙만 담고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했는데, 당국이 4년만에 입장을 바꿔 금리 산정 체계를 구체적으로 바꾸려 한다는 비판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금융위·금감원 합동리스크 점검회의에서 “최근 금리 상승 등으로 취약계층이 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을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금융권이 본연의 자금중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최근 금감원이 진행한 은행권 금리 체계에 대한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금리 산정 및 공시체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를 들어 자산수익률(ROA)을 기준으로 금리 수준을 제한한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것”이라며 “현대차가 자동차 한 대 팔 때 얼마 남겨야 하는지 국토교통부가 결정하는 것 아니지 않느냐. 수십년간 이어온 금리 자율화를 부정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2012년 10월 당시 “대출 가산금리 결정체계 및 운용 방식의 합리성·투명성 제고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되 금리 자유화 원칙에 반하지 않도록 은행 자율적으로 대출금리 산정운용에 관한 모범규준을 마련·운용하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은행들은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금리가 정해지는 원칙을 강조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같은 금액을 빌리는데 A은행이 4%, B은행이 3%라면 고객이 어디로 갈 지는 뻔하다”면서 “낮은 가격에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 당국이 자율성을 강조해왔던 얘기들이 모두 거짓이 되는 셈”이라며 “당국이 소비자를 앞세워 하고 싶은대로 하고 은행들은 소비자라는 말 앞에 아무 소리도 못한채 따라가야 하는 분위기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마자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만들 때는 대선을 눈 앞에 두고 있었으며,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탄핵안 가결로 대선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임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시장기능을 존중해 금융회사의 수수료와 금리, 배당 등의 자율성 원칙을 보장하겠다고 천명했으며 이후 이 원칙을 고수해 왔다.
금융당국은 자율성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며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을 바로잡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모범규준 내용이 매우 선언적으로만 돼 있고 실제 은행들의 운용 상황을 보면 소비자나 제3자 입장에서 합리적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 “금리를 내리라는 게 아니고 합리성이 결여된 부분을 알려주고 인식을 공유하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ROA에 비해 목표이익률이 훨씬 높으면 누가 봐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서 표면금리가 높아지면 감면금리를 적용해서 깎아주는 척 한다”면서 “은행별로 원가 체계와 이익률이 다를 수 있지만 정도가 과하면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장에 의해 가격, 즉 금리가 정해져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특정 은행과 쌓아온 거래관계와 신용이 있기 때문에 금리가 좀 높다고 해서 다른 은행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금융시장은 완전경쟁 시장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의 시각과 상반되는 대목이다.
그는 “원가를 공개하라거나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은행별로 비교적 합리적으로 하는 곳도 있고 일부 은행들은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전체가 모두 합리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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