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못지 않게 큰 관심을 모으는 건 심판의 속도다. 이는 헌재의 심리 원리나 원칙과 직결될뿐더러 향후 정치권의 움직임과 정국안정 여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절차상의 모든 '경우의 수'는 양면을 지닌다. '박근혜 탄핵심판'은 그래서 고차방정식이다.
헌재는 내주 중 재판관 2~3명을 지정해 심판 준비절차를 진행한다. 변론에 앞서 쟁점과 증거조사 유무ㆍ범위 등을 미리 정리하기 위해서다. 탄핵사유가 방대하고 복잡한 터라 곧장 변론에 돌입하면 심판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이런 절차가 없었다. ▲선거중립 위반 ▲측근비리 연루 의혹 ▲경제파탄 등으로 탄핵사유가 간단하고 다소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박 대통령의 경우 국정농단 파문과 관련한 헌법위반 5개, 법률위반 8개의 사유로 소추됐고 소추안에 등장하는 인물은 50명에 달한다. 헌재 관계자는 "조속한 심리를 통해 결정을 한다는 데 재판관들이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헌재의 구상대로 준비절차가 효용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결백을 주장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오는 16일을 기한으로 헌재에 제출할 답변서에는 탄핵사유 전체를 부인하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모든 탄핵사유를 변론과정에서 다투고 증거ㆍ증인조사까지 일일이 거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 중대 사유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심리'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헌재는 변론주의에 입각해 다툼과 주장이 있다면 모두 심리한다는 방침이다. '지루한 공방'이 박 대통령에게 소명의 기회일 수 있지만 이면도 존재한다. 증거ㆍ증인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면 그 과정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의혹이 추가로 드러나거나 의혹에 머물던 일부 탄핵사유가 사실로 확인될 수도 있다.
심판이 길어지면 헌재의 전원재판부 구성이 무너질 염려도 있다. 박한철 소장의 임기는 내년 1월31일,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는 내년 3월13일 까지다. 재판관 9명의 지혜를 모은다는 재판부 구성의 취지가 훼손될 지도 모른다. 헌재가 각종 여건을 고려해 박 소장 임기 내인 내년 1월, 늦어도 3월 중에 심판을 마친다면 결론이 어느 쪽이든 정치권은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파면되면 60일 안에 대선을 치려야 해 혼돈이 불가피하고, 소추가 기각되면 박 대통령과 정치권의 줄다리기가 다시 시작됨과 동시에 시민들의 분노가 매우 과격하게 표출될 전망이다. 물론 이는 장기간의 심리 끝에 결론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한편 헌재는 전날 국회와 법무부에 탄핵심판과 관련한 관계기관 의견서 제출을 요구했다. 국회는 탄핵의 당위성을, 법무부는 신중한 심리를 각각 주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판관들은 양 측의 의견을 개별 심리 과정에 참고한다. 김현웅 전 장관의 사임으로 법무장관이 공석인 점이 변수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상황에서 법무부가 적극적으로 방어 입장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