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제안없는 시간벌기 꼼수 지적
-본인 책임·결단 정치권에 떠넘겨
-측근 관리 소홀만 인정…반성없어
-주변인에 잘못 돌리는 모습 남 탓 여전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문은 본인의 거취에 대한 첫 담화였지만 그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할 만큼 확실하지 못했다. 담화는 구체성이 떨어지고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데다 본인의 거취를 국민이 아닌 정치권에 공을 넘기며 분란을 부추긴 격이 됐다.
◆구체적 로드맵 없이 국회 떠넘겨=이번 담화의 가장 큰 문제는 퇴진의 구체적 의미, 시기와 일정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국회가 총리를 임명해 거국 내각을 구성하고 대통령의 하야 시기와 조기 대선 등 모든 로드맵을 정해 달라는 것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하면서 담화문 발표가 시간을 벌기 위한 꼼수로 치부되는 것도 무리가 없다. 탄핵을 피하고 여야 간 갈등을 유도해 시간을 벌기 위한 약은 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1960년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 성명과 묘한 대비가 되고 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하야 성명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3ㆍ15 정부통령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다' '이기붕 의장에게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였다'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등 국정 정상화 방안을 명확히 제시했다.
◆개헌 논의로 정치권 흔들기?=또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정치권의 탄핵 전열이 흔들리는 것은 메시지의 추상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 이번 담화에도 고스란히 담기면서 여러 해석을 낳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불분명한 메시지 때문에 개헌 논란도 다시 일고 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것인지 하지 말자는 것인지, 조기 대통령 선거와 같이 치러져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불분명하다. 결국 개헌 문제로 대통령 탄핵 분위기를 흐리면서 여야 간 논쟁만 부추긴 것이다.
이에 대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대통령으로서는 퇴장 연설을 교묘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 전 장관은 "(대통령 퇴진 여부를 놓고) 여야가 합의하기 상당히 어렵다"며 "그만큼 대통령은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 탓하는 대통령, 국민은 없어=이번 박 대통령의 담화에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아홉 차례 나오지만 정작 이번 담화의 핵심인 거취 결심을 밝히는 부분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 뜻에 따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담화문 속에서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국민의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고 국회에 공을 넘겨 정치적 분란을 야기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하야 성명 1항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이번 담화문에서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키는 부분은 여전히 남 탓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며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라 주변인 관리에 소홀했다는, 결국 모든 잘못을 주변인에게 돌리는 발언은 오히려 국민 분노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박 대통령의 이번 사태와 관련한 인식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익을 추구한 일이 없고 다만 최순실이라는 사람 관리를 잘못한 죄밖에 없다는 상황 인식을 보면 꼼수가 아닌가 싶다"며 "국민의 민심에 무조건 항복하고 잘못했다 해야 하는데 국회가 알아서 해 달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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