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몇몇이 최근 주말마다 열린 촛불집회에 다녀왔다고 했다. A는 "공무원 되고 집회에 나가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행정고시 준비하느라 공부한 시기까지 합치면 소위 '데모'한 지 30년 만에 다시 거리로 나선 셈이다. B는 "지난 주말에는 나가지 못했는데 이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꼭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정치 집회에 나가는 건 불법 아니냐"고 물었다. 이들은 "공무원이기 전에 국민이다",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의 불법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선 "사실상 공직사회는 멈춘 상태"라는 말을 했다.
'촛불집회에 차마 나가지는 못하겠다'는 C는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는 사실상 폐기단계에 접어들었다. 내가 추진해온 국정과제가 최순실이 만든 것인지도 모르는데 어떤 공무원이 공을 들여 일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검찰 중간수사 발표를 지켜본 D는 "대통령이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고 했다.
우리 경제상황은 악화일로다. 지난 9월28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돼 자영업자 등 소비가 위축되고 있고, 조선·해운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 하면서 지역경기도 내리막이다. 소비, 투자, 생산 등 대부분 경제지표들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올해 2% 후반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고 하더라도 내년에는 올해만큼 성장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아지고 있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는 등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확산돼 수출환경은 더 나빠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내수에서도 건설·부동산 경기 둔화 등으로 성장을 이끌어갈 원동력이 없다.
일부 민간경제연구기관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에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예상했다. 한국은행은 2.8%, 한국개발연구원은 2.7%로 내다봤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따라 이를 0.3∼0.4%포인트 낮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할 예정이다. 지난 6월에 내놓은 전망치는 3.0%였다. 세계적 교역 감소 등을 감안하면 2% 중반대까지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정부와 한은은 각각 재정여건, 가계부채를 이유로 돈을 풀기를 주저하고 있다. 정부가 세제 등을 통해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것도 제한적이고, 과열조짐을 보인 부동산시장은 이미 관리에 들어갔다. 외환·금융당국이 '트럼프 탠트럼(trantrum·발작)'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하고 있지만, 향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등 저출산·고령화라는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갔지만 마땅한 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게이트'로 확장하면서 공직사회의 충격은 더욱 깊어지는 듯 보인다. 경제정책은 물론 주요 국정과제를 기획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은 두드러진다. 경제부총리가 곧 교체될 것으로 기정사실화 되면서 정부 경제팀의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다. 붕괴된 리더십을 놔두고 공무원을 윽박지른다고 공직사회가 제대로 가동될 수는 없다.
고위공무원 F는 "불행하게도 현재 세대보다 미래 세대가 더 못 사는 시대가 열릴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는 "지금은 비상한 각오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선진국 진입에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엿보인다. 국정공백이 장기화 될 경우, 우리 경제는 구조조정도, 4차 산업에 대한 투자도 제때 못하고 말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팀이 하루 빨리 복원돼야 한다. 새 경제팀이 다가올 불확실성에 선제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할 단기적인 '비상경제계획'을 짜야 한다. 국정의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설 때까지, 새 리더십이 중장기 계획을 만들 때까지 가교(架橋)를 만들어야 한다.
조영주 세종취재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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