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분노보다는 허탈한 마음이 컸다. 결국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퇴보했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뤘고 1997년 환란을 빠르게 극복하는 등 매 순간을 체감하며 쌓아온 국가에 대한 자부심은 이번 사건으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가시적으로 나타난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도 결국은 극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고도 호의호식한 최순실 일당을 보면서 이 역시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졌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도로 1970년대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21세기에 자행된 비선실세의 농단은 40여년 전과 판박이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를 위해 만든 재단에 비선실세인 최씨가 개입하면서 거대 기업의 팔을 비틀어 출연금을 내도록 한 것은 1970년대 그의 아버지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을 만들어 재벌의 돈을 갈취한 것과 똑같다. 그동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외치고 수없이 자정운동이 벌어졌지만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생각해보면 박근혜정부의 인식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역사 국정교과서 논쟁은 물론이고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도 그렇다. 1970년대 당시에는 중화학공업이 국가주도 경제의 핵심 축이었다면 지금은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를 내세웠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건설산업은 예나 지금이나 경기부양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정책에는 여전히 거대 기업이 뒤를 떠받치도록 한 것도 같다. 구조조정 같이 민간이 하기 어려운 영역뿐 아니라 자율이 요구되는 분야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정책의 구태를 벗지 못한 것이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과학기술 9대 프로젝트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력이 없는 민간부문을 국가가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끌고 민간은 따라간다'는 확고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결과도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경쟁력이 커지기는커녕 쪼그라들었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창조경제센터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업효율성은 2013년 34위에서 올해 48위, 인프라는 19위에서 22위로 떨어졌다. 종합순위도 22위에서 29위로 하락했다. 이러다가 국가순위마저 1970년대로 돌아갈지 우려될 정도다.
그래도 1970년대는 어려웠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시기였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보람 덕분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1970년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동안 이룬 성과가 무너진다는 의미와 같다. 최씨 농단에 '잃어버린 4년'이 40년 같은 요즘이다.
최일권 정경부 차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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