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 "초과포화 물질 상으로 신약 개발 가능"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국내 연구팀이 공중부양장치로 지구상에 없는 새로운 물질 상을 발견했습니다. 초과포화상태의 물질상입니다. 이 같은 연구 결과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았고 유럽우주기구(ESA)의 관련 미팅에 초청받았습니다.
공중부양 실험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늘 있는 일입니다. 우주라는 특수한 환경을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합니다. '단백질 결정'에 관한 실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우주는 미시중력으로 물체가 공중에 뜨고 대류 현상이 없어 결정이 만들어질 때 방해요소가 없습니다. 완벽한 결정체 구현이 가능합니다. 단백질 분자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국내 연구팀은 지상에서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 구현을 통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 상을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창의융합센터 이근우, 이수형 박사팀은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로 액체(수용액)를 공중에 띄운 뒤 물을 증발시켜 준안정상태의 초과포화 결정을 얻는 방법으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물질 상을 찾아냈습니다.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는 두 전극 사이에 중력을 극복할 만큼의 강한 전압을 걸어 물체를 띄우는 장치입니다. 미국(NASA), 일본(JAXA), 독일(DLR) 등의 항공우주국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장비입니다. KRISS는 2010년 자체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최근 미래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지구 중심부나 우주 행성과 같은 초고온, 초고압, 초과포화 등의 극한 환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합니다. 매 번 우주로 나가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 극한 환경과 비슷한 조건을 만든 뒤 물질의 변화를 측정하는 실험이 한창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는 시료를 용기에 담은 뒤 극한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용기가 시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시료 자체의 물성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물질의 생성과정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큰 단점이 있었습니다.
국내 연구팀은 시료와 용기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로 시료를 공중에 띄워 이 문제점을 해결했습니다. 기존 접촉식 기법에서는 불가능했던 300~400% 이상의 깊은 초과포화 상태를 구현했습니다.
보통 물 100g에 소금 20g이 녹습니다. 30g이 녹으면 과포화 상태가 됩니다. 이보다 더 많이 녹으면 초과포화 상태라고 말합니다. 연구팀이 이번에 발견한 초과포화 상태 물질 상을 응용하면 물 100g에 60~80g의 소금을 녹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 같은 시스템을 제약 산업에 응용하면 보다 많은 약물을 탑재할 수 있어 효과가 큰 신약 개발 등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공중에 띄우는 액체로 KDP 수용액을 사용했습니다. KDP는 인산이수소칼륨(KH2PO4)의 약칭으로 레이저 발진물질과 광학물질로 자주 사용됩니다. 결정이 잘 만들어지는 특성 때문에 이번 연구에서 특별히 KDP를 이용했습니다. 수용액의 초과포화 상태 구현 이후 액상 내에서 액체·액체 구조 변화가 먼저 발생하며 새로운 준안정적인 결정이 생성된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월24일자에 실렸습니다.
연구를 이끈 이근우 박사는 "이번 기술은 앞으로 극한 환경의 탐사를 위한 항공우주 분야는 물론 초고온 핵융합 분야의 신소재 개발, 유전병 해결을 위한 유전체지도 제작과 같은 바이오 분야 등에 사용될 수 있다"며 "특히 약을 초과포화 상태로 만들어 체내 흡수를 훨씬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제약 분야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를 접한 ESA는 국내 연구팀에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ESA 측은 "연구 결과가 흥미로운데 12월 밀라노에서 열리는 '토피컬 팀 미팅(Topical Team Meating)'에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이 박사는 "조만간 ESA의 관련 미팅에 참석할 예정"이라며 "우주에서 관련 연구를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했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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