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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잊혀진 계절, 잊어서는 안될 계절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0초

모르긴 해도 10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밤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릴 노래는 '잊혀진 계절'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982년 이용의 1집 앨범에 실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로 가수 이용은 그해 방송사 가요대상을 휩쓸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기로 따지면 1980년대 초반 가왕 조용필의 인기에 버금갔다.

공감가는 서정적 가사와 멜로디에 10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특정성이 더해지면서 해마다 이 즈음엔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원래 이 곡의 '시월의 마지막 밤'은 '구월의 마지막 밤'이었다고 한다. 이용은 당시 같은 소속사 선배 조영남에게 갈 곡이 어떤 사정으로 자신에게 넘어왔는데 판이 늦어지다 보니 9월이 10월로 바뀌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9월이면 달력으로는 가을이지만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어 온전히 가을이라 하기 힘들고 이맘때쯤이나 되어야 가을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 가사를 바꾼 건 아주 잘한 일인 듯하다. 구월의 마지막 밤을 기억하는 건 어딘지 어색하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든 9월의 마지막 날이든 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사로 유추해 보면 그 날 사랑하던 연인은 헤어졌다. 그러나 주인공은 왜 헤어졌는지 당최 알 수 없다. 그저 '뜻모를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진 것이다. 제목에서 굳이 '잊은'이나 '잊어버린' 계절이 아니라 '잊혀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별은 주인공의 의지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주인공은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더 해석된다. 헤어진 건 그 날 단 하루 몇 시간이었을 테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 자체가 잊혀진 주인공은 그래서 더 슬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가을은 상실의 계절이다. 떠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잊혀진 계절은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치유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을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락한 사태를 접한 국민들의 상실감과 배신감은 쉬 치유되지 않을 성싶다. 그것도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말마따나 '강남에 사는 웬 아주머니'가 실세 중에 실세였다니 참담함이 그지없다.


그간 소문이 무성했지만 금단의 권력 앞에 금기어나 다름없던 최순실의 실체가 하나 둘 베일을 벗으면서 민주공화국에서 '수렴청정'을 한 정황은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년 전 박관천 경정이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그 다음이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까지 나온 의혹과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국민을 잊은 지 오래였음이 분명하다. 오직 나라와 국민을 생각한다던 대통령에게는 오로지 최순실만 있었을 뿐이다. 이번 일은 겉으로 보기엔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한 것이지만 문제의 본질로 따진다면 박 대통령 스스로 국정을, 온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측면이 크다. 최고권력자가 관계를 끊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끊었을 텐데 그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한 것도 모자라 국정 전반에 대해 코치를 받은 때문이다.


최순실의 말처럼 '나라 걱정뿐'이라던 박 대통령이 온 국민을 나라 걱정하게 한 격이 됐다. 국민들을 향해 "혼이 비정상"이라거나 여러 사안에 대해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던 박 대통령은 그 말을 그대로 본인에게 되뇌어야 할 판이다.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 그리고 관련자들은 이번 가을이 하루빨리 '잊혀진 계절'이 되었으면 하겠지만 민주주의 근간을 통째로 흔든 초대형 스캔들에 맞닥뜨린 국민들에게 이번 가을은 '잊혀지지 않는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아니 '잊어서는 안될 계절'이다.
 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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