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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불타는 비탈/이선균

시계아이콘00분 57초 소요

  
 노모와 고추를 딴다. 노모의 허리와 무릎이 익힌 통증을 딴다. 가슴 깊숙이 욱여넣은 통점을 열면 문득 서늘해지는데


 고추씨로 허기 면하던 까치들, 거덜 나는 고추밭 내려다보며 칵칵 퍼덕퍼덕 으름장 놓는다. 잘 익은 고추씨가 일용할 양식이란 걸 저들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얼얼한 통증의 맛을 어떻게 즐기기 시작했을까. 비릿한 씨앗이 다글다글 뜸들 때까지 무엇으로 견뎠을까. 생각의 꼬리가 날개를 타는데

 빨갛게 가꿔 놓은 일 년 농사를 까치 무리들이 짓이겨 놓는다고, 저 새들이 화적 떼가 되어 간다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라고 노모의 한숨에 산자락도 허리 굽는데


 저녁 하늘이 불타고 있다.

 접시꽃 이팝꽃 샐비어……
 툭, 툭, 툭 벌어지는 그 순간


 노모가 소리치신다.
 밥부터 먹자, 저 꽃들도 허기지겠다!


 

[오후 한詩] 불타는 비탈/이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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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맺히는 어느 저녁 무렵이었나 보다. 한낮을 지나 그때까지 시인은 다 늙은 어머니와 고추를 땄나 보다. 노모는 아마도 한생을 기울여 고추를 심고 가꾸고 거두고 다시 심고 그랬겠지.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가고 십 년이 오십 년이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이 가고 가고 그랬을 테지. 그동안 노모는 온몸에 새겨진 깊은 주름들만큼이나 참 많은 일들을 겪었을 것이고. 어떤 날은 기뻤고 어떤 날은 슬펐고 또 어떤 날은 폭폭했고 그렇게 말이다. 그에 비하면 저어기 저 산 너머에서 반가운 손님이 곧 올 거라고 아침부터 살뜰하게 울어 대던 까치가 지금은 "화적 떼가 되어" 가는 것쯤이야 어쩌면 대수롭지도 않은 일. 그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一切無常). 둘러보면 온 세상천지가 화택이지 않은가(三界火宅). 그 안에서도 꽃은 피고 지는 게 이치고 또한 그래야 그 씨앗은 세상을 향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니 잔말하지 말고 두말하지 말고 일단 "밥부터 먹자, 저 꽃들도 허기지겠다!" 이 한 말씀 이루기 위해 참 갸륵한 생이셨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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