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결 의지 약화 우려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조속한 타결을 촉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연내 체결이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해 RCEP을 추진하는 동아시아 16개국 정상(아세안+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들은 공동선언문에서 "2016년 말까지 협상을 완료한다"고 명시한 바 있는데, 추진속도를 감안할 때 연말까지 타결이 어렵다는 관측이다.
각국 정상은 8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폐막한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공동선언문에서 "아직 상당한 작업이 남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는 문구를 적시하며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사항이 많다는 점을 시사했다.
특히 지난해 정상공동선언문에 명시된 협정 체결 시한이 올해 선언문에는 빠지면서 오히려 RCEP 타결 의지가 약화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EAS에서 발표된 정상공동선언문에 따르면 정상들은 "협상 진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각국 장관들과 협상단에 RCEP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각국이 협력해 협상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린다"고 표현했다.
이는 "2016년내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한다"고 구체적인 시한을 명시한 지난해 선언문 보다 각국이 받는 심리적 압박이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구체적인 시한이 빠진 것과 관련해 "지난해까지 시한을 명시하고 이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자 아예 뺀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각국 정상들이 조속한 타결을 위해 협력한다'는 표현을 통해 RCEP에 대한 적극적 협상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RCEP은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블록으로, 2013년 5월 첫 협상이 시작됐다. 이 협상이 타결되면 인구기준으로는 세계 최대, GDP기준(22조4000억달러)으로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27조4000억달러)에 버금가는 거대 경제블록이 탄생하게 된다.
협상이 난항을 겪는 이유는 참여국별로 교역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상품, 서비스, 투자 등의 자유화 수준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 호주 등 이미 대외개방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개방수준을 높이자는 입장인 반면, 개발도상국은 가급적 이 수준을 낮게 유지하자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올해 EAS에서는 회원국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상품의 경우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추진하되, 나라별로 다양한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서비스와 투자 부문의 경우 개방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올해 RCEP 공동선언문 도출에는 호주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국 정상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호주가 "조속한 타결을 위해 각국이 협력하자"는 내용을 넣자고 제안했고, 이를 EAS가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호주는 이날 EAS 차원의 북핵 비확산성명 채택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EAS정상회의 직후 말콤 턴불 호주 총리와 약식회담을 갖고 사의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비엔티안(라오스)=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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