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31일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 출근길은 법정관리 현실화에 따른 충격에 뒤숭숭한 모습이었다.
금융당국과 한진해운 채권단은 전날 경영정상화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판단, 추가자금 지원 요청을 거부하며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돌입이 불가피하게 됐다.
출근 중이던 한 직원은 "법정관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채권단 자율협약 과정에서 임직원들의 월급은 깎이고 정규직 직원들 상당수가 이미 회사를 떠났는데 이보다 더 가혹한 조건을 내놓을 법정관리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다른 한 직원은 "법정관리를 받으면 채권·채무가 동결된다는데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거냐"고 하소연했다.
채권단이 야속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직원은 "유동성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자율협약하에서 회사가 자구안을 충실히 이행했고 선박금융 유예와 용선료 협상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신규자금 지원 불가 결정을 내린 건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채권단이 구조조정 원칙론 때문에 한진해운을 버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다른 직원은 "해운업계 골병은 8년 전부터 이어져왔는데, 우리 정부는 생사기로 직전에와서야 해운업계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면서 "정부가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1위 국적선사가 무너지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 경기침체와 이로 인한 물동량 감소, 선박 공급 과잉, 운임의 급격한 하락 등이 맞물리며 해운업계가 장기 불황에 빠졌고, 한진해운은 실적과 재무구조 악화 이중고에 시달리며 자금 압박이 가중돼 왔다.
한진해운은 약 2조8400억원 가량의 금융권 부채를 안고 있다. 누적 손실과 부채 부담이 장기화되다 보니 운전자금은 바닥난 지 오래다. 선박 용선료와 컨테이너박스 사용료, 급유류 등 약 6000억원 가량 미지급금이 연체된 상태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STX와 대한해운이 모두 법정관리 수순을 밟은 데 이어 국내 최대 선사 마저 같은 운명을 맞게 된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한진해운 채권단은 전날 긴급 채권단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한진해운이 제출한 자구안으로는 내달 4일 종료예정인 자율협약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의견을 모았다.
추가 재원 마련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운임하락으로 업황 악화가 이어질 경우 자금 투입규모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될 것으로 보고 존속 보다는 청산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앞서 지난 25일 한진해운 최대주주 대한항공이 4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추가 부족자금 발생 시 조양호 회장 개인과 기타 한진 계열사가 1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부족자금 조달방안을 제시했으나 채권단은 미흡하다며 추가 자구안을 요구했다.
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사실상 파산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량 자산을 모두 매각한데다 정기선을 운영하는 컨테이너 업태 특성상 청산 절차 개시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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