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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콤플렉스⑧]진이, 소프라노 가수를 유혹하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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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목소리 자유자재로 내는 평양 이언방…하지만 진짜 좋아한 남자는 김경원?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황진이의 한시에는 수수께끼같은 남자 하나가 나온다. ‘별김경원(別金慶元, 김경원을 보내며)’. 관직 이름도 붙어있지 않고 별다른 설명도 없는 인물이다. 경원은 호인지 이름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시의 내용을 보면 범상치 않다.


三世金緣成燕尾 此中生死兩心知
삼세금연성연미 차중생사양심지


삼세의 아름다운 인연이 제비꼬리처럼 나란히 하였으니
이중에 살고 죽는 일도 두 마음이 알아채리라.


楊州芳約吾無負 恐子還如杜牧之
양주방약오무부 공자환여두목지


양주에서의 꽃약속을 나는 어기지 않겠지만
걱정스러운 건 그대가 도리어 두목지같아서요.


황진이가 삼세의 황금인연이라고 할 만큼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언젠가 양주에서 함께 살자고 하고 헤어지는 중에 시를 썼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마음이다.


두목지는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 803-852)을 가리킨다. 목지는 그의 자이며, 호는 번천(樊川)이다. 그는 시에도 뛰어났지만 풍채가 수려했다. 그러니까 예쁜 황진이도, 잘 생긴 남자를 떠나보내면서 불안해하는 것이다. 떨어져 있어도 생사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인데도, 남자는 일단 눈에서 멀어지면 믿기 어렵다. 뿌리깊은 불신이 내내 그녀를 간섭한다.


황진이가 굳이 두목과 비교한 것은 김경원 또한 시에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이 김경원을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알려진 스타도 아닌데다가 조롱거리나 흥밋거리로 삼을 만한 스토리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혹은 황진이가 나이 들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에, 만난 사람일 수도 있으리라. 여하튼 김경원이야 말로, 황진이가 진짜 함께 살고 싶었던 첫 남자이자 마지막 남자가 아니었나 한다.


[황진이 콤플렉스⑧]진이, 소프라노 가수를 유혹하러 가다 1957년 조긍하감독 영화 '황진이'의 도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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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가 마음과 앞섶을 여는 남자들 중에는 가수 두 사람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은 이언방(李彦邦)이다. (이언방 이야기를 실은 사람은 허균이다.) 조선 명종 때의 명창이었던 그는 여자 목소리를 잘 냈다. 가락이 맑고 높아서 듣는 사람들이 일제히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고 한다.


평양에서 이언방은 특별한 공연을 했다. 교방 기생 200명을 열을 짓도록 하여 앉혀놓고 한 사람마다 다가가 노래를 시켰다. 기생이 선창을 하면 이언방이 화답을 하는 형식이었다. 200명 중에는 행수(行首)기생도 있었고 열 살도 안되는 동기도 있었다. 이 남자는 여자들의 모든 목소리에 맞춰 막힘없이 노래를 불렀다.


이 놀라운 이벤트에 관한 소문은 황진이의 귀에도 들어갔다. 당대 노래의 귀재인 그와 만나 놀고 싶었다. 열 일 제쳐놓고 황진이는 이언방을 만나러 간다. 그런데 희대의 ‘남자 소프라노’인 그는 무대 바깥에서는 여자처럼 수줍음이 많았다. 절세 미인 황진이가 불쑥 얼굴을 내밀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가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댁이 이백 명의 여자 목소리를 가진 이언방이란 분이...신가요?”


언방은 불쑥 시치미를 뗀다.


“아...닌데요.”


“그럼, 뉘신지요?”


“저는, 이언방의 아우 됩니다. 형님은 밖에 나가셨소.”


“그렇다면 그분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소이다.”


“누구시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시오?”


“나는 송도 기생 황진이라고 하옵고, 그의 음악을 사모하여 함께 터놓고 노래하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왔소이다.”


“황진이라면, 뭇사람들이 신이 내린 목소리라 말했던 그 기생이 아니오?”


“이언방 선생의 목소리에 비한다면 쇳소리에 불과합니다.”


“제가...형님의 노래를 조금 흉내낼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하오?”


이언방은 최대한 목청을 긁어가며 남자 목소리를 낸다. 한 곡조가 끝났을 때 황진이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나를 속이지 마시오. 내가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래요. 당신이 이언방이오. 제나라의 명창 면구(綿駒)와 당나라의 가수 진청(秦靑)인들 당신보다 잘 부를 순 없을 겁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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