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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콤플렉스⑦]그 사내는 왜 그날밤 진이에게 두손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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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스토리 - 소세양은 말했다 "난, 사람이 아니오, 명월에도 명월을 보고싶소"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한 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우리는 물론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 당사자들인 소세양과 황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잘 생긴 남자와 여자로 서로에 취했다. 그 다음엔 술에 취했다. 그 다음엔 음악에 취하고 그 다음엔 시에 취했다. 술과 시가 버무려져 사랑이 되고 음악과 밤이 버무려져 운우가 되었다.

처음엔 남자와 여자였는데, 갈 수록 영혼이 소통하는 솔메이트(soul mate)가 되어갔고, 깊은 내부로 흐르는 소리를 알아듣는 지음(知音)이 되어갔다. 이건 기생이 아니라 마음이 가지런히 함께 눕는 친구이다. 이건 기생을 사러온 풍류객이 아니라 오랫 동안 벙어리처럼 닫았던 입을 열게 하는 정신의 반쪽이다.


사내의 몸에선 천하의 시가 흐르고 여인의 몸에선 지상의 노래가 솟았다. 그러다가 여윈 달이 봉긋해져 마침내 하루의 살점만 빠져있는 밤이 되었다.


그토록 사내의 깊은 속으로 들어간 황진이지만 이때쯤 되면 처음의 전열(戰列)을 가다듬는다. 내일이면 저 사람은 떠난다. 저 사람이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나는 이미 안다. 개성의 달빛 누대에서 황진이는 심호흡을 하며 비장의 시를 읊는다.



달빛 아래 뜨락 오동잎이 다 졌네요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래졌고요


누대는 높아 한 자만 더 오르면 하늘
사람은 취해서 천 잔의 술을 마셨네요


흐르는 물은 가야금 소리처럼 차고
매화는 피리 속에 향기를 넣네요


내일 아침 서로 헤어지면
그리운 생각 푸른 물결처럼 길겠죠


月下庭梧盡 霜中野菊黃
월하정오진 상중야국황


樓高天一尺 人醉酒千觴
누고천일척 인취주천상


流水和琴冷 梅花入笛香
유수화금랭 매화입적향


明朝相別後 情與碧波長
명조상별후 정여벽파장



‘송별소판서(送別蘇判書)’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한 달의 사랑게임이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증언해주는 듯 하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이토록 빼어난 한시를 쓸 수 있는 황진이의 작품들이 인멸(湮滅)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키운다.


月下庭梧盡(월하오동진)과 霜中野菊黃(상진야국황)은 한 달 전 맹약을 할 때 말했던 것들이다. 오동잎이 지고 들국화가 노래지면 우린 헤어질 거라고, 두 사람은 처음에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땐 이렇게 사랑의 속병이 생겨날 줄 몰랐다. 그런데 기약했던 달이 돌아오고, 날짜를 짚어가며 추측했던 서리가 내렸다. 오동잎이 떨어지는 것은 사랑의 배터리 잔량이 사라져가는 것과 다름없고 들국화가 노랗게 되어가는 것은 폭탄의 인화선이 타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오동잎 떨어지면 가슴이 내려앉고 국화가 짙어지면 슬픔이 짙어졌다. 그래서 오늘까지 왔다.


樓高天一尺 人醉酒千觴(누대천일척 인취주천상). 앞부분은 명월의 이야기다. 황진이 스스로가 명월(明月)이기에 한달이 지나면 이제 하늘에 걸린 명월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 딱 한 자가 남았다. 뒷부분은 양곡의 이야기다. 이 사람은 슬픔에 술을 퍼마셨다. 명월이 하늘로 다가갈 수록, 남자는 비운 술잔을 쌓았다. 처음엔 색에 취해 술을 마셨고 나중엔 사람에 취해 시에 취해 술을 마셨다. 한달간 천 잔을 마셨다면 하루 서른 석잔씩은 마시지 않았는가.


流水和琴冷 梅花入笛香(유수화금랭 매화입적향). 이 대목은 이별파티에서 서로가 말없이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황진이는 가야금을 타고 소세양은 피리를 분다. 그런데 가야금 소리는 흐르는 물처럼 차갑다. 진이에게 ‘흐르는 물’이란 떠나는 사내와 동의어이다. 기약한 한 달이 되었다고 칼같이 끊고 떠나는 사람이니, 차가울 수 밖에. 평소엔 따뜻하던 음(音)들이 계곡 물소리에 묻혀 서늘해졌다. 소세양이 부는 피리에는 매화 향기가 난다.


계절은 오동잎과 들국화가 있는 가을이니, 매화꽃이 피어있을 리 없다. 소세양의 피리에 그려진 매화 문양이 아니었을까. 매적(梅笛)이니 거기엔 매화 향기가 있을 법 하다. 매화는 봄에 피는 꽃이다. 이 가을에 차갑게 떠나는 당신, 다음해 봄이 되면 매화처럼 다시 피어날까요. 피리 소리에 황진이는 슬쩍 희망사항을 숨겨넣었지만, 사실은 기약없는 이별의 괴로움이 있을 ‘긴 겨울’의 환기이다.


明朝相別後 情與碧波長(명조상별후 정여벽파장). 내일 아침에 가시겠죠? 그렇지만 그간 쌓은 정은 푸른 물결처럼 영원히 출렁거릴 겁니다. 그날 밤 소세양은 내내 그 시를 읊조렸다. 마음이 출렁거려 멀미하는 듯 했다. 천 잔의 술이 이제야 한꺼번에 취하는 듯 했다. 뱉은 말이니 어쩌겠는가. 말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이토록 귀한 사람을 어디서 다시 만나겠는가. 오마이갓.


이튿날 두 사람은 마주 섰다. 말없이 바라보는데 서로의 눈에 맺힌 눈물이 보인다. 껴안아 뺨을 대니 맺힌 눈물이 한 줄기가 되어 주르르 흐른다. 손을 아직 잡은 채로 소세양은 돌아서 가려다가, 자석이 붙은 듯 다시 안겼던 자리로 돌아온다.


“그대, 미안하오. 나는 사람이 아니오.”
“대감, 그러하오시면...”
“양곡의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소. 금월에도 명월을 보고 명월(다음달)에도 명월을 보고 싶다고.”
“서방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 있다. 하지만 황진이가 대승을 거둔 그 30일 전투가 끝났을 때 세상사람들은 서둘러 관심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면 그렇지. 양곡을 슬쩍 비웃으며, 황진이의 전설을 확성기에 담았을 것이다.


게임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삶은 게임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아마도 두 사람은 곧 헤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양곡은 다시 벼슬에 나아갔을 것이고 황진이는 명성을 전리품으로 챙기고는 담담하게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양곡이 그날 아침 싹둑 자르고 떠나지 않은 것은, 그릇이 컸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잠깐 져주고 세상에 못난 인간이 됨으로써 기특한 지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오.”


그 말 속에는 한달 전의 약속을 상기한 의미도 있었지만, 한 달 전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도 있었다. 여자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그때가 사람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런 역설도 숨어있었다. 세간의 눈들이 사라진 뒤에 그들은 조용히 이별을 했으리라.


굳이 여자를 이기려들지 않는다는 것. 소세양은 그 지혜를 터득한 사내였다. 그리고 황진이는 얼굴이 예쁜 여인이 아니라, 영혼이 예쁜 여인이었다는 것을 그는 가슴에 담고 떠났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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