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군대용어의 재발견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군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 중에는 빤빠라와 탱자탱자하다, 그리고 한 따까리가 있다. 빤빠라는 군대의 비상나팔을 흉내낸 말로, '빤스'바람을 줄여 변형시킨 말이며, 군장을 갖춰입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벗고 팬티만 입은 채 집합하는 일종의 체벌행위다. 탱자탱자하다는 말은, 긴장이 사라진 채 '고문관'처럼 구는 병사를 향해 지적질하는 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곧 닥쳐올 얼차려를 예감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 한 따까리. 이 말은 정체 불명이며 어원을 찾기도 어렵고 분석하기도 어렵다.
따까리란 말은 주로 경상도 쪽에서 쓰는 사투리로 '뚜껑'을 가리킨다. 그런데 한따까리의 '한'은 '한번'이나 '하나(一)'의 뜻으로 분리되는 말인지라, 뚜껑 하나라는 뜻으로,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 말은 군대에서 잘못한 일이 있어 벌하거나 정신력 고취를 위해 가하는 얼차려 행위다.
이 말을 조심스럽게 분석해보자면, 푸닥거리가 어원이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푸닥거리는 무당이 하는 굿으로 부정이나 살을 푸는 제식행위를 말한다. 말하자면 무당이 미친 듯이 칼을 흔들고 방망이를 두들기고 춤을 추듯 한 차례 일을 벌이는 것이 푸닥거리다. 영화 '속성'에서 일광이 하던 그 굿이다. 실제로, 한따까리란 말 대신에, '푸닥거리 한 판 해야 정신을 차리겠어?'라는 말로 풀어 쓰기도 했다.
한따까리는 '한 푸닥거리'를 편의로 줄여 붙인 말인듯 하다. 푸닥거리의 '닥거리'만 남긴 어근과 어미 오인에 따른 오용인 셈이다. 지금에야 용훼하며 한 따까리를 이토록 찧고 까불 수 있지만, 군대에서 그야 말로 살 떨리는 말이었다. 한 따까리란 말이 고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이런 열하의 기온 속에서도 에스키모의 빙하가 흘러다녔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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