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 5일 발생한 울산 지진으로 '긴급재난문자' 서비스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전만 해도 관심이 없던 국민들이 이번 지진에서는 국민안전처가 지진 직후 발송한 긴급재난문자 서비스를 놓고 '부실ㆍ늑장대응', '사후약방문'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긴급재난문자 서비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 긴급재난문자 서비스란?
이동통신 기지국을 통해 긴급재난문자 수신 가능 단말기(CBS 기능탑재 단말기)에 재난문자를 동시에 전송하는 대국민 공익 서비스다. 여기서 CBS는 방송국 이름이 아니다. Cell Broadcasting Service, 즉 동일 기지국내에 있는 모든 단말기에 동시에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서비스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8조(재난 예보ㆍ경보의 발령 등)에 따라 태풍, 폭염, 호우나 지진 등 자연재난 및 사회재난 발생 시 해당 지역의 휴대전화에 긴급 재난정보를 실시간 전달해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송출 비용은 공익 목적으로 이동통신 3사가 부담한다. 문자 용량은 120bytes 이내, 즉 띄어씌기를 포함해 60자 이내만 가능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발송되나?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의 경우 기상청이 발생 사실을 인지한 후 국민안전처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통보하며, 안전처는 전국 또는 해당 지역을 선정하고 내용을 입력해 발송한다. 이 문자는 이동통신 기지국을 거쳐 휴대전화 가입자에게 전송된다. 사회재난은 발생 지역 지자체나 유관기관에서 재난 정보 및 행동요령을 입력해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발송을 요청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긴급재난문자도 종류가 있다?
재난문자는 위급재난문자, 긴급재난문자, 안전안내문자 등 3가지가 있다. 위급재난문자는 전쟁상황에서 공급경보 등의 발령에 쓰인다. 수신 휴대전화에서 60dB이상의 큰소리로 착신음이 울리며 수신 거부가 불가능하다. 긴급재난문자는 각종 재난시 주민대피 상황을 알리거나 민방위 경계경보 발령용이다. 40dB의 보통 크기의 착신음으로 설정돼 있으며 수신을 거부할 수 있다. 안전안내문자는 재난 유형에 따른 안전 정보 안내 목적으로 일반 문자와 같은 크기의 착신음이 울린다. 수신거부도 가능하다.
▲60자 이내 단문 메시지만 오는 이유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통신 회사들의 시스템 상의 제한 때문이다. CBS 발송 가능한 글자 수는 KT, SK, LGU+ 모두 LTE 환경에선 180bytes(90자 이내)이며, LGU+ 2G 단말기의 경우에는 120bytes(60자 이내)에 불과하다. 따라서 안전처는 모든 단말기가 수신할 수 있도록 60자 이내의 문자를 보내고 있다.
▲일부 휴대전화 소지자들이 문자를 못 받았는데?
수신 가능 휴대전화의 종류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2G 휴대전화나 2013년 1월1일 이후 신규 출시된 4G 휴대전화는 모두 문자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3G 휴대전화나 2012년 12월31일 이전 출시된 4G 휴대전화, 또는 사용자가 메시지 설정을 통해 수신 기능을 해제한 경우는 문자 수신이 불가능하다. 수신 불능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긴급재난문자를 받으려면 정부가 제작한 '안전디딤돌'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된다. 앱 마켓, PLAY스토어에서 '안전디딤돌'을 다운로드ㆍ설치한 후 재난문자ㆍ기상특보 환경설정을 클릭해 지역ㆍ수신 여부를 설정하면 된다.
▲ 지진 규모 별로 발송 여부가 다른 이유는?
안전처는 규모 5.0이상(바다 5.5이상)의 지진을 '조기경보' 대상으로 설정해 놓았다. 기상청에서 통보를 받는 즉시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문안을 작성해 전국 모든 지역에 재난문자가 발송된다. 문제는 규모 5.0 이하의 지진이다. 이는 조기 경보 대상이 아니라 '통보' 대상이다. 안전처는 규모 5.0 이하의 지진이 발생하면 진도 4.0 이상의 지역에 한정해서만 재난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이번 지진에서 부산, 대구, 경북 등의 주민들이 흔들림을 느꼈지만 재난문자를 받지 못한 이유다.
안전처가 이처럼 지진 강도 별로 재난문자 발송 여부를 구분한 것은 "괜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책적 판단 때문이다. 진도 4.0 이하에선 피해가 거의 없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진동도 느끼지 못한다는 상황을 감안해 기준이 정해졌다. 그동안 일부 국민들이 재난 문자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귀찮다'며 불만을 터뜨려 온 것도 감안됐다.
▲'18분'이나 걸린 이유는?
이번 울산 지진은 오후8시33분에 발생했지만 재난 문자가 도달한 시간은 오후 8시51분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파괴되는 지진이라는 재난의 특징을 감안하면 '하나 마나한 서비스'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사람들은 특히 지진 발생 직후 피해가 시작되기도 전에 공중파 방송을 통해 지진 경보가 발령되는 일본을 예로 들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전처는 '시스템의 한계'라고 호소하고 있다. 일본은 지진이 일어나면 실시간으로 전국 각 지역에서 땅의 흔들림을 감지해 어떤 곳이 얼마나 심하게 흔들려 피해가 발생할 지 여부를 분석할 수 있다. 공중파 방송에서 20초 내에 지진경보가 발령된다.
반면 현재 안전처 지진방재과에서 가동 중인 지진피해예측시스템이나 기상청의 지진계측시스템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진 통보에서 문자 발송까지 15분 정도는 걸린다는 입장이다. 공중파를 통한 지진 재난자막방송도 일본보다 훨씬 늦은 50초가 소요된다.
일본은 전국에 쫙 깔린 지진계측기ㆍ슈퍼컴퓨터가 순식간에 작업을 처리하지만, 우리나라는 시스템상 한계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이 첫 서비스, 왜?
안전처는 그동안 태풍, 폭염, 호우, 가뭄 등 다른 자연재해들에 대해선 긴급재난문자 서비스를 실시해왔지만, 지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이유는 '예보'가 불가능한 지진의 특징,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 지진 경보 시스템의 한계 등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현재 일본을 포함해 전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지진을 사전에 예보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곳은 없다. '지진 발생을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가 사전에 예측해 대비할 수 있는 다른 재난들과 달리 '사후약방문'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지진 안전지대'라는 점을 믿고 지진 방재 분야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아 온 우리나라는 지진 계측 시스템에서 '후진국' 수준이다. 활성 단층 정보도 거의 축적돼 있지 않고, 전국에 설치된 지역별 진도계측기도 현재 145개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안전처는 '뒷북'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하다는 판단 하에 그동안 지진 관련 긴급재난문자 서비스를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 대지진이 계기가 됐다. 공포를 느낀 부산 등 일부 지역 주민들이 "왜 아무 일도 안 하냐"고 비판을 쏟아냈다. 안전처는 당시 범정부적 지진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지진 관련 긴급재난문자 서비스를 진도 4 이상 지역에 제한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욕 먹을 것이 뻔하다"는 내부 이견에도 불구하고 불안 해소ㆍ여진 대비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 지진 재난문자서비스의 앞날은?
결국 예산이 문제다. 지진계측기를 촘촘히 깔고 최신형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인력을 양성하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신속한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국민들에게 재난 발생을 알리고 대피ㆍ행동 요령을 알리는 것이라면 공중파 방송, 라디오, 민방위 경보 등 이미 다양한 대안들이 있다. 정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휴대전화 문자 서비스는 사실 도움도 안 된다. 기지국이 파괴되면 문자도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은 국민의 몫일 것이다. 국민적 동의가 뒷받침되면 막대한 예산ㆍ인력이 투입돼 신속한 긴급재난문자 서비스가 갖춰질 것이다. 그러나 '뭣이 중헌디?'.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대지진 발생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 지, 행정 서비스에 대한 과도한 눈높이가 공무원ㆍ관련 업계의 배만 불릴 우려는 없는 지. 지난해 초 발생한 가뭄 때 정부는 '40년만의 대가뭄'을 운운하며 20조원대 '제2의 4대강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지만, 이후 기후 상황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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