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미국 정부가 6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을 인권유린 혐의로 제재대상에 올렸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제재대상으로 삼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강력한 대북제재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북미 관계는 '출구가 없는' 냉각기가 지속될 전망으로 외교적 실익을 얻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미 국무부는 이날 미 의회에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나열한 인권보고서를 제출했다. 재무부는 이를 근거로 개인 15명과 기관 8곳에 대한 제재명단을 공식 발표했다. 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 입국 금지와 미국 내 자금 동결 및 거래 중단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대북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미국과 교류가 거의 없는 북한에 실질적 타격을 주지는 않지만 북한 정권 핵심부를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심리적 압박감은 예상보다 클 것으로 봤다.
우리 정부는 환영의 뜻을 전했다. 7일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개별국가나 국제기구 차원에서 취하는 북한인권 관련 최초의 제재조치"라며 "높이 평가하며, 환영한다"고 밝혔다. 올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 더불어 대북제재 선봉에 섰던 정부의 입장에서는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온 '제재 효과'에 대한 잡음을 잠재우는 실익을 챙겼다는 평가다. 또 지난 2월 남북관계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까지 강행한 정부의 대북기조에 한층 더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동안 대화의 가능성을 모두 닫지 않았던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과의 관계는 벼랑 끝에 서게 됐다. 내년 1월 임기가 종료되는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이고 차기 정권에서도 긴 냉각기로 접어들게 됐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넘어서는 대북 강경책을 구사할 것으로 미 외교가는 보고 있다. 지난 달 2일 외교정책구상연설에서 그녀는 북한을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가학적 독재자가 이끄는, 지구상의 가장 억압적 국가"라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에 군사적 대응 외에 뾰족한 대응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국제사회에서 인권범죄자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지 미지수다. 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도 미국과 남중국해 문제 등 복잡한 외교 갈등이 있기 때문에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힘든 시점이다. 결국 미국 정부의 이번 '초강수'는 자칫 '자충수'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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