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글로벌 성장 둔화로 인해 그렇잖아도 어깨가 무거운 세계의 중앙은행장들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로 더욱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금융시장의 수호자들이 브렉시트라는 새로운 격변에 휘말리게 됐다고 28일(현지시간) 평가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날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포럼에 참석해 "모든 중앙은행은 정책들이 제대로 조정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브렉시트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는 글로벌 금융환경에 대비해 각국 중앙은행이 정책 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셈이다.
그는 "글로벌 경제가 통합되면 통합될수록 글로벌 정책 공조가 중요해진다"며 "한 국가의 통화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에 의존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드라기 총재는 브렉시트가 야기할 수 있는 환율전쟁 가능성에도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쟁적 통화완화는 결국 모두가 패배하는 '루즈(lose)-루즈' 게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금융시장 혼란을 지켜본 중앙은행장들은 그의 충고에 공감할 듯하다. 브렉시트로 인해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서 돈을 빼내 안전자산으로 예치하면서, 달러와 엔화가치는 치솟고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는 급락했다. 지난 이틀간 흔들렸던 시장은 슬슬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만 브렉시트의 중장기적 영향력은 아직 예측 불가능한 상태다.
이번 ECB포럼 행사 참석을 취소한 미국과 영국 중앙은행장들은 물론 각국 중앙은행장들도 불확실성 속에 놓이게 됐다. 차기 총리후보로 꼽히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의 지지에도 불구,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가 우려를 부채질했다며 그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가능성도 다시 희박해졌다. 브렉시트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게 제기됐으나, 이제는 다시 12월로 연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급등한 엔화가치를 잡기 위한 일본은행(BOJ)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빠르면 내달 중으로 추가완화 카드가 나올 것이란 게 시장 전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완화보다는 긴축 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 효과가 얼마나 날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와 BOJ는 29일 오전부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긴급회의를 열고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WSJ는 드라기 총재의 이같은 발언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중앙은행이 사용할 수 있는 경제 활성화 수단이 더 이상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마틴 루엑 수석 독일투자전략가는 "ECB는 더 이상 경기부양 수단이 남아있지 않으며, 있다 하더라도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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