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비(非) 미국인 '커리어 그랜드슬래머', 29세에 대기록 달성, 팔순에도 근육질 몸매 자랑
[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미국인이 아닌 유일한 '커리어 그랜드슬래머'.
지구촌 골프역사상 세번째 대기록의 주인공은 개리 플레이어(남아공)다. 진 사라센과 벤 호건,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등 다른 4명이 모두 미국선수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주 무대가 남아공이었기 때문이다. 1959년 디오픈 우승을 기점으로 1961년 마스터스, 1962년 PGA챔피언십, 그리고 1965년 US오픈에서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불과 29세의 나이였다.
1935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나 14세에 골프에 입문했다. 아버지는 광부, 어머니는 8살때 암으로 세상을 떠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아버지가 다행히 빚을 내면서까지 골프채를 사줬고, 플레이어는 곧바로 주니어무대에서 우승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17세인 1953년 프로로 전향해 6년 만인 1959년 디오픈에서 메이저 첫 우승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플레이어의 전성기는 특히 잭 니클라우스와 아널드 파머라는 '골프전설'이 버티고 있던 무렵이다. 플레이어가 가세해 '빅 3의 황금기'를 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남아공과 짐바브웨 등 남아프리카 6개국이 참여한 선샤인투어가 출발점이다. '내셔널타이틀' 남아공오픈에서 13승을 쓸어 담는 등 통산 73승을 수확했고, PGA투어에서는 449경기에 등판해 메이저 9승을 포함해 통산 24승을 올렸다.
고국인 남아공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여느 선수들처럼 PGA투어에만 전념하지 않았다는 대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남아공을 오가느라 1500만 마일 이상을 여행해 '골프 국제대사'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였다. 여기에 호주투어 18승과 기타투어 27승 등 전 세계를 섭렵했고, 만50세가 되던 1985년에는 챔피언스투어에 입성해 메이저 9승 등 또 다시 19차례나 정상에 등극했다.
플레이어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열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요약되는 까닭이다. "170㎝의 단신을 극복하고, 60년 동안 프로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두철미한 몸 관리"라고 했다. 바로 피트니스다. 2013년에는 실제 77세의 나이에 '바디 이슈(Body Issue)'라는 잡지에 단단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누드사진을 공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플레이어는 당시 "매일 식이요법은 물론 조깅과 스쿼트, 그리고 1200개의 윗몸 일으키기를 한다"고 소개했다. 요즈음에는 자신의 건강 비결을 설파하는 데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일시적인 운동은 도움이 안 된다"며 "아무리 간단한 운동이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평소 후배들에게는 "열심히 연습할수록 운이 따른다"고 조언했다.
"연습량이 많으면 실전에서 행운이 찾아오고, 이는 뚝심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플레이어의 1965년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딱 한 차례의 US오픈 우승이 대표적이다. 켈 네이글(호주)과 동타(6언더파 282타)를 기록한 뒤 다음날 18홀 연장혈투 끝에 기어코 항복을 받아냈다. 1978년 마스터스에서는 최종일 7타 차를 뒤집고 통산 세번째 그린재킷을 입는 뒷심을 과시했다.
플레이어는 지난 4월 올 시즌 첫 메이저 마스터스에서 니클라우스와 함께 시타에 나서 여전히 활기있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하루 전날 열리는 '파3 콘테스트'에서는 7번홀에서 홀인원까지 터뜨려 팔순을 자축했다. 코스설계와 골프용품회사 등 다각적인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지금은 '개리 플레이어재단'을 통해 남아공에 흑인아이들이 무료로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운영하는 등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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