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시샘'- 이 환장할 봄날에 읊고싶은 시 '유원불치'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응련극치인창태 應憐?齒印蒼苔
소구시비구불개 小?柴扉久不開
춘색만원관부주 春色滿園關不住
일지홍행출장래 一枝紅杏出牆來
--- 섭소옹(攝蘇雍)의 '유원불치(遊園不値)'
뜨락에 갔으나 못 만나고
이끼에 찍히는 신발 자국이 슬프네
가만히 문 두드렸는데 영 열리지 않네
봄빛, 뜰에 꽉 차 빗장 안에 머물지 못했던가
한 가지 붉은 살구꽃, 담 너머로 나왔네
허허. 뜨락에 놀러갔습니다. 마음 속에 돋는 봄기운을 못견뎌서 갔던 걸음입니다. 전에도 갔던 길, 그저 마음 내키면 가보는 길.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오랫 동안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소문이 있고, 자잘한 불화가 겹친 뒤로 내 발길이 감히 거기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봄이 되니 생각이 났습니다. 보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었거든요. 그래서, 마치 귀신에 끌리듯 슬그머니 그 그립던 뜰에 닿았습니다.
치(値)는 ‘값을 하다’라는 뜻인데, 내가 갔으니 헛걸음을 하지 않으려면 그 값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헛걸음입니다. 이쪽의 기대값과 저쪽의 실제값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치(値)라는 말에는 ‘만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의 뜨락에 놀러갔으나 그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목에는 ‘그’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유원불치. 뜨락에 놀러갔는데 만나지 못하다. 왜 그럴까요. 그의 집에 ‘그’가 비어있는데 시라고 그를 함부로 데려와 앉힐 수 있겠습니까.
극치는 신발 아래에 있는 무늬들입니다. 이끼 가득한 길을 걸으니 신발 무늬가 자꾸 찍히는데 마음에 슬픔이 일어납니다. 그게 응련극치인창태입니다. 오랜 만에 그 친구의 뜨락에 놀러가는데, 오랫 동안 사람이 걸어가지 않은 길이라 이끼가 잔뜩 끼었습니다. 내 발자국이 자꾸 도장처럼 또렷이 찍힙니다. 그게 어찌나 슬픈지요. 친구와 내가 그간 소원했던 것이 여지없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뒤늦게 가보는 걸음이라 몰래 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여길 오지 않았다는 뜻이니, 그 또한 미안하고 허전합니다.
소구는 살그머니 두드리는 일입니다. 북한에선 이걸 손기척이라 한다더군요. 그러니까 노크를 하는 것인데, 혹여 갑작스런 방문이라 놀랄까 주저하는 마음으로 기척을 보냅니다. 사립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당연히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문이 열릴 리 없습니다. 문 밖에서 서성이며 혹시나 하고 발자국 소리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친구는 없습니다. 어디론가 떠났을까요. 이끼를 보니 잠깐 외출을 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안에 틀어박혀 귀를 막은 것일까요. 소구시비구불개.
인간의 일이야 덧없고 표변하기 십상이지만 자연은 늘 무덤덤하게 사람을 맞습니다. 때로 그 무심함이 생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봄빛이 뜨락에 가득 차서 어쩔 줄 모릅니다. 주인이야 뜨락의 모든 목숨들에게 단단히 빗장을 쳐놓은 셈이지만, 그 안의 꽃과 나무와 풀은 이제 바람이 나기 직전입니다. 사람의 슬픔에 걸맞게 빗장 안에서 놀면 좋겠지만, 그만 그러지 못합니다. 오 마이 갓. 춘색만원관부주.
가장 몸이 단 것은 살구꽃 한 가지입니다. 붉은 꽃을 매단 이 어여쁜 여자는 월장을 하고 맙니다. 주인님도 안 오시고 봄날은 가고 이 몸은 탱탱해져 가니 어쩌겠습니까. 담 넘어 찾아온 객을 맞으러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게 일지홍행출장래일 텐데, 문득 그리운 친구 대신 살구꽃의 교태를 보는 시인의 마음엔 슬픔만 더 커집니다. 사람 대신 무심한 화용(花容)이 그를 맞으니, 그립던 생각만 더 힘겹습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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