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생존을 위해 숨 가쁘게 진행되는 조선ㆍ해운 구조조정의 종착지가 '빅딜(big deal)'로 향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그동안 선(先) 구조조정 후(後) 금융 지원의 기조를 바탕으로 구조조정을 독려해 왔지만 이제는 빅딜이라는 최후의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조선과 해운업황이 단기간에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데다 재무구조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회사 대 회사' 통폐합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수주 절벽에 허덕이는 조선업종은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기업 간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과잉 공급 시장구조에서 조선사업의 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M&A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정부는 대형 조선 3사를 1~2개로 줄이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빅딜의 중심에는 KDB산업은행이 사실상 관리ㆍ운영해 온 대우조선해양이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5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자체 회생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이 가운데 삼성중공업에 대우조선을 통째 또는 일부 사업부를 넘기는 방안이 제기된다. 삼성계열사인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과 같은 거제에 위치한 데다 중공업에만 의존하는 현대중공업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사정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만 대우조선은 선(先) 정상화, 후(後) 매각의 절차를 밟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대우조선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며 정상화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해운업도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주채권은행인 산은의 역할론이 커질 전망이다. 현대상선은 채권단이 공동관리 중인 상황이어서 산은이 상선의 부실을 떠안고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용선료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는 기존대로 지원하거나 법정관리 또는 출자전환을 통해 산은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길이 있다.
산은은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추가 자구안을 내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을 사실상 포기한 현대상선처럼 경영에서 물러나라는 2가지 안을 압박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한진해운의 지원을 조건으로 현대상선과의 합병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당국의 이같은 방안이 현실화되기에는 여러 걸림돌이 있다. 조선업계 내부에서는 3~4년만 버티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어차피 공급 과잉으로 벌어진 '치킨 게임'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보다 오래 버티면 결국 조선 빅3의 세계 독식 구조가 다시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부 매각이나 통폐합의 경우도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해 노동계와 노조와 임직원 등 구성원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해운업계는 인위적 구조조정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은 시너지효과가 없고 2개 대형선사가 상생체제를 유지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게 해운업계의 시각이다.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세계 항로의 99%를 관리하는 글로벌 컨테이너선사 동맹에서 빠지게 돼 사실상 퇴출에 이르게 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국 해운사가 주도한 초대형 해운동맹이 탄생하고 각국이 해운업 육성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만 역주행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럴때일수록 해운산업에 대한 확고한 지원의지와 경쟁력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