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양적완화 정치권 주문에도 1.5% 유지
내수·경제주체 심리 다소 개선…국내경제 회복 전망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19일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청록색 넥타이를 맨 이 총재는 자리에 앉으면서 "(일부 금통위원에겐) 마지막 금통위라 기자분들이 많이 오셨다"며 밝게 웃었다. 4월 금통위를 마지막으로 금통위원를 떠나는 하성근, 정해방, 정순원, 문우식 위원을 향해 한 말이었다. 이내 이 총재의 얼굴에는 미소가 걷혔고 이 총재는 다시 굳은 표정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현재의 1.5%로 유지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지난해 6월 0.25%포인트 떨어진 후 10개월째 동결됐다.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통화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 총재와 금통위원들의 경기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달 수출이 올해 초에 비해 감소세가 약화되고 소비자심리지수, 기업경기실사지수 등이 개선돼 평소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경제지표에 근거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경향)'를 강조하는 이 총재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가 동결되기는 했지만 이번 금통위에 쏠리는 관심은 컸다. 금통위원 4명이 한꺼번에 바뀌는 데다 총선 기간 내내 한은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은의 통화정책이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발 '한국판 양적완화' 논란이 그것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총선과정에서 한은법 개정까지 거론하며 한은이 보다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 입장에선 정치권의 공약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 조차 조심스러웠다.
양적완화에 대한 이 총재의 발언을 보면 이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총재는 총선 전인 지난달 말 자신의 취임 2주년 행사에선 "특정 정당의 공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한국은행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반면 총선 이후엔 비교적 분명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양적완화와 관련, "방법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한은이 나서라는 뜻으로 이해했다"며 "지금은 한은이 나설 상황은 아니다"라고 비교적 분명하게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이 총재는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도 "중앙은행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얼마든지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의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를 포함한 글로벌 경제상황이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역할인 물가관리를 넘어 정부와 보조를 맞춰 경기부양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여느 때 보다도 커지고 있다. 당장 이날 오후 발표되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하향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를 주문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더욱 세질 전망이다. 이 총재가 금통위에서 예의 그 환한 웃음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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