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낱말의 습격'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엄마,나는 어떻게 생겨났어요?"
"음...다리밑에서 주워왔어."
"다리밑에서? 그럼 엄마가 낳은 게 아니고?"
"으응."
"진짜? 난 진짜 다리밑에서 주워온 아이야?"
"그렇대도."
이런, 어린 시절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저 대답에 얼마나 황당하였던가. 당당한 혈통으로 이 집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주워온 자식이라는 절망감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도대체 왜 저런 기막힌 우스개로 나를 놀라게 했을까.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에 대해 굳이 설명해주는 것이 쑥스러웠던가.어차피 자라나면 알게 될 일이니 옛 사람들로부터 전해 받은 유머를 다시 내게 전달한 것일까. 어쨌든 이 얄궂은 출생비밀은 오랫동안 어린 가슴에 남았다.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이 내게 섭섭하게 대할 때마다, 그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어머니가 나를 주워왔다고 주장한 곳은 경주 북천의 다리밑이었다. 덕동호와 보문호수에서 흘러내린 물이 큰 강물을 이뤄 흘러가던 옛 북천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이제는 밑바닥이 드러난 쓸쓸한 개울이 되어버린 곳. 황성공원을 덮치는 매운 바람 끝자락이 한 바탕 거친 소리를 내며 교각을 감싸도는 음산한 저 다리밑. 저녁 무렵이면 경주를 떠도는 거지나 노숙자들이 가마니나 볼박스를 쌓고 덧대어 잠자리를 꾸미던 더러운 다리밑. 세상에, 거기서 나를 주워왔다는 것이다.
서울 같으면 염천교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어디에나 그런 다리가 있다. 그런데 진짜 다리밑은 경북 풍기에서 부석으로 가는 길에 소수서원 입구를 지난 직후에 만나는 청다리(제월교) 아래를 말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다리밑의 원조격이다. 서원들이 많았던 이 동네에는, 공부하러 온 젊은 유생들이 넘쳤는데, 그래서 연사(戀事)들이 옛부터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청다리 근방에는 서원에 공부하러 온 유생들을 뒷바라지 하는 여종들이 많이 살았는데,한창 젊은 혈기가 뻗치는 유생들이 그들을 집적거리기도 하고, 좀더 대담한 녀석들은 그 마을 처녀와 눈이 맞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어찌 잘못되어 임신이 되기도 하였던가 보다.
그들에게 이런 일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유생녀석은 고민 고민 끝에 처녀와 미리 짜고는,이 사생아를 다리밑에 버려둔 뒤,자기가 우연히 다리를 지나다 갓난 아기를 주운 것처럼 꾸미는 '노하우'가 유행했다. 자기 아기임을 감추고 "다리밑에서 주워온 불쌍한 아이니 거두어 키우자"고 부모에게 청원하였다는 것이다. 유생의 부모들이야 자식의 그런 수작을 왜 몰랐으랴? 알면서도 모르는 체 제 손자를 거둬 키웠으리라. 아무리 사련(邪戀)에서 돋아난 핏줄이지만 제 자식을 내칠 수는 없었기에 말이다. 청다리에서 주워온 자식이 얼마나 많았기에,그런 말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전국에 유포되어 각지의 다리밑에서 주워온 아이들로 이 나라가 득실득실하게 되었을까.
그런데 이런 아기들의 울음으로 늘 다리밑이 시끌시끌했던 청다리는 아주 음산한 옛 기억을 간직한 다리다. 이 동네에 와 있던 금성대군이 단종복위를 모의한 사실이 관노의 밀고에 의해 발각되었다. 그 뒤 이 다리가 있는 순흥에는 무서운 피바람이 몰아쳤다. 어린임금의 복위에 뜻을 같이 했던 수많은 선비들의 피로, 청다리 아래 흐르던 죽계천의 물이 40리에 걸쳐 핏빛이었다고 한다.지금도 죽계천변에 있는 마을인 동촌리는 <피끝>이라고 부른다. 이런 떼죽음의 원혼들이 서려있는 다리가 바로 청다리다.
그래서인지 청다리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1966년 시멘트 다리가 놓이기 전에,이곳은 두 해마다 새로 놓은 나무다리였단다. 이 나무다리를 밤에 건너려면 동백꽃을 입에 물고 소꼬리를 붙들고 건너야 하는 속설이 있었다. 동백꽃은 청다리귀신이 이 붉은 꽃을 보고 무서워서 해코지를 못하도록 하려 함이고, 소꼬리는 벌벌 떠는 나그네가 그걸 잡고 걸어가면 소꼬리 앞에 몸체 없는 소가 끌어준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런 귀신 사나운 청다리이니, 그 다리밑에 아기의 울음소리들로 생명의 기운을 보태주는 것은 어쩌면 섭리에 알맞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4.3항쟁으로 피섬이 되었던 제주도가 커플들의 불야성(?)으로 생기를 회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리밑의 원조는 청다리였는지 몰라도, 어머니가 말한 다리밑이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머리 굵어져 보니 문득 알게 된다. 그 다리는 물 위에 놓인 다리(橋)가 아니라 사람의 다리(脚)였다. 그러니까 다리밑이란 교하(橋下)가 아니라 각하(脚下)인 셈이다.내 출생의 비밀은 여기서 풀렸다. 인간치고 다리밑에서 생겨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니 어머니의 말씀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다리밑으로 나왔고 분명 거기서 주워올렸을 내가 아니었던가. 그 다리밑인 것을 결코 알리 없는 어린 가슴만 고민에 휩싸이게 했던 얄궂은 중의법이었다.
피비린내나는 청다리까지도 갈 것없이 인간의 다리밑도 핏덩이 쏟아낸 아픔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그 고통은 생명의 존귀함을 각인시키려는 신의 기획일 지도 모른다. 아픈 다리밑에서 주워온 나는, 다시 아픈 다리 아래에서 아이들을 주워다 키운다. 핏줄은 수천년을 흐르는 강이다. 그 강 위에 인간의 다리가 놓인 셈이다. 아이를 보면서 알 수 없이 켕기는 그리움은 저 강물의 출렁임이고 다리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현기증같은 게 아닐까 한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