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조각가 부부 김서경·김운성씨 인터뷰
2011년 12월 1000차 수요시위때 '1호 소녀상' 제막
지금까지 소녀상 6종 제작돼…김씨 부부 소녀상 서른여 곳 설치
'작은소녀상프로젝트', '한중 소녀상' 관련 다큐 참여
다음달 소녀상 관련 갤러리 전시도 열려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지난 17일 정오 어김없이 '수요시위'가 열렸다. 1218번째였다.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참가자 500여명이 모였다. 소녀상 왼편에는 간이분향소가 설치됐다. 시위 이틀 전 할머니 또 한 분이 별세했다는 비보가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모(90) 할머니는 혹독한 통증을 겪으며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이날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89)는 울분을 토하며 나라를 원망했다. 50일 넘게 소녀상을 지키며 농성중인 대학생들에겐 미안해했다. 겨울비가 내린 후 최근 날씨가 다시 쌀쌀해졌다. 길게 눈이 내린 날도 있었다. "밤샘 하지 마세요. 감기 들지 말고 건강하세요." 마이크를 잡은 할머니의 말에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많았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 이후 소녀상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일본 정부와 언론에서 소녀상 철거를 공론화하고 우리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소녀상을 지키자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소녀상은 이제 위안부 문제를 상징하며, 예술로서 소통의 힘을 발휘하는 아이콘이 됐다.
'평화의 소녀상'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13~15세 정도의 소녀 조각상과 빈 의자, 할머니 형상의 그림자를 그린 좌대로 이루어졌다. 소녀의 굳은 표정과 움켜쥔 두 손은 일본의 책임회피에 맞서는 분노다. 머리카락은 거칠게 뜯긴 듯한 단발로, 댕기를 하던 조선 소녀가 일제에 의해 부모, 고향과 단절된 모습을 의미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는 맨발로 뒤꿈치를 들고 있다. 간신히, 죽을힘을 다해 고국에 돌아왔지만 편견과 외면으로 편할 날 없던 마음을 뜻한다. 소녀의 왼쪽 어깨 위에 놓인 새는 세상을 하직한 할머니와 살아있는 자를 잇는 '영매'다. 빈 의자는 먼저 떠난 할머니가 앉을 수 있도록, 소녀의 심정을 느낄 수 있도록 놓아두었다.
조각상을 받친 좌대에는 할머니 그림자가 있다. 할머니의 가슴 부분에 '환생'을 뜻하는 하얀 나비가 보인다. 나비로라도 환생해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를 받아야한다는 의미다. 청동으로 제작한 조각상의 높이는 136㎝다. 좌대의 크기는 가로 180㎝, 세로 160㎝이며 10㎝높이로 땅에 붙어 있다. 이렇게 소녀상은 작고, 접근하기 쉽다. 보는 사람의 시선은 아래로 향한다.
수요시위 현장에서 소녀상을 제작한 부부 조각가 김서경(52), 김운성(53)씨를 만났다. 이들은 소녀상이 유명해진 것을 오히려 마음 아파했다. "사안이 해결되지 못한 채 더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아내 김서경씨는 "2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일본 정부에 대항한 할머니들의 외침과 싸움이 없었다면 소녀상은 저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소녀상은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제작됐다"고 했다.
남편 김운성씨는 지난 2011년 1월 수요시위 현장을 지나다 소녀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당시는 김씨 부부가 10년 동안 살던 경기도 여주를 떠나 서울에 정착할 무렵이었다. 이들은 미술가로서 사회운동과 연대해 많은 작품 활동들을 해왔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모르지 않았다. 10년이 지나도록 위안부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운성씨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찾아가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이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비석 디자인을 요청받았는데, 평화비 건립에 대해 일본 정부가 간섭을 하고 나섰다.
김씨 부부는 비석만으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아 조각을 하자고 정대협에 제안했고, 김서경씨가 모델링한 소형 조각을 토대로 소녀상을 만들었다. 소녀상은 그해 12월에 열린 1000차 수요집회에 맞춰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졌다. 그동안 날개 달린 소녀상, 한 손에 나비를 들고 있는 소녀상 등 소녀상의 종류도 여섯 개로 늘었다. 기본상인 앉아 있는 소녀상의 경우 제작기간은 약 3개월, 새 디자인으로 만들 경우는 6개월 정도 걸린다.
"아픈 역사를 추념하는 공공미술, 불편한 진실을 들춰낸 점에서 전위적"
조각가 부부가 만든 소녀상은 국내 스물일곱 곳, 미국 두 곳, 캐나다 한 곳에 있다. 모두 시민 기부로 제작됐다. 소녀상은 앞으로 아산, 안산, 목포, 서울 동작 등에도 세운다. 열 곳 이상이다. 소녀상을 만들고도 제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운성씨는 "미국 LA 어바인에서 일본인들과 일본정부로부터 제지를 심하게 당해 결국 세우지 못했다. 한인 추진위원장이 병이 날 정도로 낙심했다"고 했다.
지난 3일부터 부부 조각가 참여하는 '작은소녀상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사람들이 손에 잡힐 만큼 작은 소녀상을 갖고 다니며 위안부 문제를 알려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크라우딩 펀딩업체인 '텀블벅', 3D업체 '글룩', 피규어제작사 '그레이포인트' 등과 협업하고 있다. 한일합의 이후 국내에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복지사업과 소녀상 건립, 추모사업 등을 위한 가칭 '정의기억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의 수익금은 재단 기금으로 들어간다.
올해는 미국에서 소녀상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영화도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해 김씨 부부는 중국계 미국인 영화제작자의 권유로 영상 촬영에 합류했다. 김씨 부부와 중국인 조각가 판위친 칭와대 미술학과 교수가 함께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호소하는 '한중 소녀상'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다. 한중소녀상은 지난해 10월 서울 성북구 가로공원에 설치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다음 달 일본대사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서울 수송동 한 화랑에서 소녀상을 주제로 한 전시를 한다. 여기서 그동안 제작한 소녀상 여섯 종류를 소개한다. 미술평론가 김준기씨(47)는 "소녀상은 국가주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한계를 넘어서는 매우 뜻 깊은 작품이다.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어 성노예로 고통 받은 아픈 역사를 추념하는 공공미술"이라며 "전쟁의 상처를 다루는 역사성과 일본대사관 앞이라는 장소성을 토대로 분노와 치유의 기억투쟁"이라고 했다. 김순협 갤러리 고도 대표(55)는 "소녀상은 불편한 진실을 들춰냈다는 점에서 전위적인 작품이며, '미술인-그들만의 리그'라는 공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했다.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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