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은 시인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지 71년이 되는 날입니다.
1945년, 시인은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스물 아홉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는 끝내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했지만
죽는 날까지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 중에서
시인은 순수한 시절을 동경했습니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별 헤는 밤' 중에서
하지만 가혹한 시대는
시인이 끊임없이 갈등하게 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자화상' 중에서
자신의 안온한 삶도 부끄러워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쓰여진 시' 중에서
부끄러움을 알았기에 참회했고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참회록' 중에서
기꺼이 희생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 중에서
하지만 시인에게는
새로운 미래로 가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
-'또 다른 고향' 중에서
지금 우리는
시인이 느꼈던 부끄러움과 참회를
잊어도 되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을까요?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