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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詩人은 왜 살아서 유고시집을 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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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 - 천상병 시인 탄생 86주년

그 詩人은 왜 살아서 유고시집을 냈나? 천상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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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귀천'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순수했던 시인은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썼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29일은 고 천상병 시인이 태어난 지 86년이 되는 날이다. 시의 표현을 빌리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시작한 날인 셈이다. 문단의 기인이었던 시인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일화 중 하나는 그가 살아서 유고시집을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당시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대규모 간첩사건이 있었다.

천상병이 연루된 이 사건은 1967년 발표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예술인, 유학생, 교수, 의사, 공무원 등 194명이 동베를린에서 대남 적화활동을 했다고 주장하며 미술계의 거장 이응로 화백, 작곡가 윤이상, 물리학자 정규명 등 107명을 입건했고 31명을 구속했다.


이 때 천상병의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였던 강빈구도 간첩으로 몰렸다. 강빈구를 만나 술을 마셨던 천상병은 불고지죄로 기소됐다. 검찰은 천상병이 "중앙정보부에서 동독 갔다 온 사람을 대라고 해서 난처하다"는 말을 함으로써 겁을 줘 강빈구에게 6500원을 받았고 이후에도 술값으로 100원이나 500원씩을 받아 도합 3만원을 갈취했다고 주장했다.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했던 시인이 지인들에게 막걸리 값을 얻어 쓰곤 했던 것을 두고 간첩인 것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고 협박해 돈을 갈취했다고 한 것이다.

천상병은 이 일로 전기고문 등 치욕스러운 취조를 받고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선고유예로 풀려났지만 이후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 등이 겹쳐 1970년께 행방불명이 된다. 천상병이 사라지자 그가 죽었다는 얘기가 퍼졌고 지인들은 그를 기리며 유고시집 '새'를 펴냈다. 하지만 거리에서 쓰러졌던 천상병은 죽지 않았고 행려병자로 오인돼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돼 있었다. 살았지만 유고시집을 낸 데는 동백림 사건이라는 부끄러운 역사가 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동백림 사건의 배경에는 1967년 6월 8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당시 여당이 70%가 넘는 다수 의석을 차지했고 전국에서는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열렸다. 이후 1969년 3선 개헌과 1972년 유신 선포가 이어졌으니 6.8 선거는 박정희 정권의 집권 연장을 위한 포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7차례에 걸친 동백림 사건 수사 발표 이후 잠잠해졌다.


동백림 사건은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조사를 거쳐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규모 간첩사건으로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 과장했으므로 정부는 관련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천상병 시인의 아내 문순옥 여사는 인사동에서 '귀천'이라는 찻집을 했다. 부인도 고인이 된 지금은 조카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벽에는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고 시작하는 '행복'이라는 시가 걸려있다. 불행한 시대를 살면서도 행복을 찾았던 시인의 마음이 별 다를 게 없는 2016년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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