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신혼인 남직원에게)"어젯밤에 뭐했어? 얼굴이 수척해."
(자녀가 없는 여직원에게)"애는 언제 가질거야? 낳을 거면 빨리 낳는 게 좋아. 얼른 만들어"
(집을 알아보는 동료에게)"빚은 다 갚았어? 전세야 월세야?"
회사에서 나누는 대화 중 어디까지가 '동료로서의 관심'이고 어디서부터 '사생활 간섭'에 해당할까? 아직은 이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마련돼 있지 않다. 성희롱, 인권 침해 등 각종 민원을 청취하는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의 박용권 사무관은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냐 그렇지 않냐'에 따라 문제가 되는 상대적인 상황이 많다"며 "(직장 내 사생활 간섭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아직은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민원도 들어온 것이 없어 제도를 만들어 권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사생활 간섭이 문제가 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앞서 상사가 면담 자리에서 여직원의 임신 계획을 구체적으로 물어 갈등을 빚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직원 입장에서는 '자녀 계획'을 상사가 물은 데 대해 사생활 침해라고 여길 법 하다.
국내에서 근무하는 미국 출신의 T씨(30대 중반·여성·기혼)는 이에 대해 "그런 걸 물어오면 당연히 항의할 것 같다"며 "미국의 경우였다면 절대 그런 얘길 해서도 안 되고 컴플라이언스나 성차별 문제로 해당 상사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처음 만나면 마치 인사처럼 '결혼했냐, 몇 살이냐' 등을 물어온다"며 "서로 그런 질문을 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기분 나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각에서는 기간이 정해진 프로젝트성 업무가 많은 기업의 경우, 인력운영 관리 차원에서 여직원의 임신 시기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육아휴직 등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대체 인력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내 대기업에서 20년 이상 인사업무를 맡아 온 한 관리자는 "(상위 직급에 있는) 부서장이 배경을 충분히 설명한 뒤 물었다면, 기분 나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배려해준 것이 됐을 수도 있다"며 "결국 소통 방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리자는 이어 "성희롱은 '범죄'라는 인식이 높은 만큼 사회적 컨센서스(consensus·합의)가 이뤄져 다들 조심하는 반면, 사생활 간섭 문제는 좀 다르다"며 "개인 사생활을 보호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데 아직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기업 특유의 특성 상 관심과 간섭의 경계가 애매하다"며 "관심을 갖는답시고 쉽게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이 사생활에 대한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젊은 직원들이) '사생활 간섭한다'고 투정만 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기분 나쁘다'라고 솔직히 알리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도 해야 한다"며 "성희롱 문제도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논란이 일어나니까 노동계에서도 관심을 갖고 점차 발전돼 온 만큼 (사생활 간섭 문제도)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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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이진경 디자이너 leeje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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