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기자 - '논란의 행간'취재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2013년 8월 12일 초판이 나왔고, 2015년 6월16일에 제2판이 나왔다. 기자가 구입한 것은 '34곳 삭제판'이라는 붉은 배너가 붙은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출판사)다. 세종대학교 교수인 박유하(1957- , 일어일문학과)박사는 서울태생으로 게이오대학과 와세대 대학 및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한-일 간에 민족주의를 넘어선 대화를 모색하는 '한일, 연대21'을 조직해 역사화해와 관련한 활동을 해왔다.
논란이 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가 겪은 역사를 본인의 선택이었다는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지적을 받았고 지난 13일 법원으로부터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할머니 9명에게 각각 1천만원씩 9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15년 2월 재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정을 요구한 53곳 중에서 34곳을 삭제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제2판은 그 결과로 나온 책이다. 또 박유하 교수는 오는 20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 형사재판을 받는다.
일본과 미국의 언론들 또한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국내의 학자와 지식인들 간에도 논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학문이나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로 볼 것인가, 역사적 사실의 치명적인 왜곡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격론이 오가고 있다. 최근 한-일 간의 위안부 협상 타결과 맞물려, 국가적인 '스탠스'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에,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논점들은 심각하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하다. 기자는, 이 문제의 판관(判官)이 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책이며, 무슨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떤 귀절들이 숨어있기에 이토록 큰 잡음과 갈등을 불러일으켰을까' 하는 대중적인 궁금증을 지니고 문제의 책을 펼쳐 그 구석구석을 읽어주고자 하는 것 뿐이다. 판단의 상당 부분은 행간을 함께 탐사하는 독자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우선 맨 앞에서 만날 수 있는 '제2판 서문 - 식민지의 아이러니'를 읽었다. 세상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박유하 교수의 격한 심경이 엿보이는 글이다. 삭제판을 내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한 뒤 "이 삭제판의 모습은, 실은 체제와 국가에 반하는 사상은 검열하여 출간하던 일제강점기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격앙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서문의 제목으로 붙인 '식민지의 아이러니'의 의미이기도 하다. 즉 식민지의 문제를 고찰하는 책이 식민지의 '잔재'에 의해 강제 처분을 받았다는 핀잔이다. 또 그녀는 이런 '삭제' 조치까지 가게된 이유가, "<제국의 위안부>의 출판을 금지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새로운 도서를 출판할 것이므로 박유하의 활동을 방치한다면 왜곡되고 오염된 일본군 피해자의 상이 한국과 일본 사회에 각인될 것"이라고 씌어진 고소장에 대해 격앙하고 있다. 이 책을 고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활동 자체를 억압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책은 제1부에서 '위안부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다뤘다. 이 질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위안부의 '사실과 이미지'가 과연 욿은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박유하는 주로 센다 가코(千田夏光)란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1973년에 펴낸 책을 중요한 텍스트로 삼고 있다. 그 제목은 '목소리 없는 여성 8만명의 고발, 종군위안부'다. 박유하는 이 책이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거론한 첫 저술이라고 평가했다. 즉 위안부의 존재를 알린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는 얘기다. 이 책에는 놀랍게도 1970년대 초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들을 찾아내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다. 40여년 전의 '위안부' 피해자 중년여성들이 생생하게 자기의 체험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센다의 취재 연구를 바탕으로 '위안부의 시대'를 미시사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던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던 확고부동한 논의의 틀을 흔들기 시작한다.
가장 큰 '도발적 문제제기'는, 위안부 모집업자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의미망'일 것이다. 일본이 직접 위안부를 강제동원하지 않았다. 그 중간에 한국인을 중심으로 한 모집책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위안부 모집을 돈벌이로 활용했다. 모집책들은 폭력을 동원하기도 하고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이런 논의 중간중간에 박유하는, '물론 큰 틀에서 보면' 일본이 식민지배를 하면서 그런 행위를 유도한 건 분명하지만, 그 점만으로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것은, 세부적인 맥락들을 읽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속임수에 현혹된 점도 있지만, 소녀들 스스로가 가난을 극복하고 공부를 하고 싶고 '흰 밥'도 먹고 싶어서 꾀임에 빠진 것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위안부를 쇠막대기로 후려갈기고 쇠막대기로 내친 것은 군인들이 아니라 위안부를 직접 관리한 포주나 관리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37년과 1939년의 신문에는 '가여운 소녀들 독아(毒牙, 독사의 이빨) 희생 150명 유괴마(魔)'란 제목이 등장한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가 기획한 국가적인 '동원'의 문제와 그것들을 대리 수행하는 '유괴마'의 문제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그것을 동일 선상에 놓고, 책임소재를 이동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많은 이들을 우려스럽게 하고 격앙하게 한 점이 아닐까 싶다.
박유하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구조적인 강제성과 현실적인 강제성의 주체가 각각 누구였는지를 보아야 한다."
즉 구조적인 강제성은 일제의 식민체제에서 나왔고, 현실적인 강제성은 한국인 모리배들이 한 것이니, 이 모두에게 고루 '위안부 강제동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관점은, 비록 새롭기는 하지만, 본말을 전도하고 문제의 핵심과 경중을 희석시킬 수 있는 위험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기자독자의 소박한 일감(一感)이다.
<제국의 위안부> 샅샅이 읽기
1편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1617332365768
2편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1619133619323
3편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1621094988284
4편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1706451008322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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