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삼성이 반올림과 최종합의에 이르기까지에는 삼성의 많은 양보가 있었다. 그 동안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등의 신화를 함께 써내려간 반도체 노동자들의 노고와 공로를 고려해 양보의 자세에 나선 것이 문제 해결의 물꼬를 튼 것이다.
◆'제3의 기관 사업장 감시' 허락한 삼성전자=삼성전자의 전 사업장 중 보안이 가장 삼엄한 곳은 단연 반도체 사업장이다. 생산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종류, 새로 들여온 장비 등의 내역만 유출되도 타격이 크다. 화학물질과 장비 내역을 파악할 경우 삼성전자가 어떤 공정과 어떤 과정을 거쳐 반도체를 생산하는지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제2의 삼성전자'를 꿈꾸고 있는 중국, 대만 업체들과 유지하고 있는 2~3년의 기술 초격차가 단숨에 좁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우려 때문에 삼성전자는 자체적인 건강관리 조직 강화를 강조하며 옴부즈만 제도 운영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자칫 사업상의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예방책 합의에서 삼성전자가 옴부즈만 제도를 허용한 것은 이같은 우려를 무릅쓰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선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옴부즈만위원회는 삼성전자 사업장 내부에 대한 종합진단과 함께 사용한 화학제품에 대한 무작위 샘플링 조사 권한도 갖고 있다. 이 중 유해 화학 물질이 확인될 경우 이를 사용 정지할 권한도 갖게 돼 건강관리에 있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제3의 기관이 사업장 종합 진단을 하고 화학제품에 대한 샘플링 조사와 사용 정지 권한까지 갖는 등 조정위의 옴부즈만 제도는 회사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면에서 적극 수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3자 합의 좌초 위기때마다 양보...대타협 이끌어내=협상 초기부터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 반올림 등 3개 주체의 협상 여부가 의견 좁히기 보다는 삼성전자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관측해왔다. 결국 협상이 좌초될 위기 마다 삼성전자는 양보해 대타협을 이끌어 냈다.
삼성전자가 가대위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정위원회를 설립할 당시 반올림측은 즉각 반대했지만 조정위원장을 비롯한 조정위원 대다수가 시민단체 출신과 인권운동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이를 수용했다. 친노동성향 인사 위주로 조정위원회가 구성돼 삼성전자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결국 이를 양보했다.
조정권고안 발표 이후에도 삼성전자는 거듭 양보했다. 조정위는 권고안에서 1000억원의 기금을 출연하고 보상 대상 질병도 세부 사항에 포함시켰다. 삼성전자는 권고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편 수차례 어렵다고 밝혀왔던 협력사 직원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시켰다.
보상 내역도 삼성전자의 법적 책임을 넘어설 정도로 범위를 넓혔다. 산재 신청자는 물론 산재 미승인 퇴직자, 산재 신청 대상 기준이 아닌 사람까지 보상을 진행했다. 사과 문제에 있어서도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서한을 보내 개별적인 사과를 마친 만큼 양보의 미덕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세계 반도체 업체 중 삼성전자만큼 공개적으로 백혈병 등의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없었다"면서 "IBM의 집단 소송 등 과거 분쟁 사례 대부분이 조용히 피해자와의 합의로 마무리 된 만큼 삼성전자가 공개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협상 좌초 위기 마다 양보해 대타협을 이끌어 낸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