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가고 싶다."
지난 1일 출산·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박은영(가명·여·31)씨가 달고 사는 말이다. 5개월 반 된 아들의 잠자는 얼굴만 본 지도 일주일 째. 회사로 돌아왔지만 잘한 일인가에 대한 판단은 명확히 서지 않았다. 수면 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경기도 용인에서 삼성역까지 출근하려면 최소 2시간 전엔 출발해야 한다. 오전 6시쯤 출근 전 아이를 시댁에 맡긴다. 근무를 하면서도 밥은 잘 먹는지, 아이 때문에 시어머니가 힘드시진 않을 지 조마조마하다. '베이비시터'에 아이를 맡기자니 돈도 너무 많이 들고 아직 어린 아이를 남의 손에 무작정 맡기기는 불안했다.
퇴근 시간 땡하면 회사에서 나오고 싶지만 '워킹맘(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일을 하는 여성)'이라 '칼퇴'한다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눈치만 본다. 혹시 회식이라도 잡힐까 싶어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퇴근하면 집안일이 쌓여 있다. 꽉 막힌 퇴근길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한 박씨의 저녁 시간은 이유식 만들기, 빨래·청소하기로 바쁘다. 남편이 도와주긴 하지만 박씨가 하는 것만큼 꼼꼼하지 못하다.
"네? 최하위 고과라고요?"
"대놓고 둘째 얘기 하는 것 아닙니다."
박씨는 지난해 최하위 고과 점수를 받았다. 입덧이 심할 때도 배가 불러올 때도 꾹 참고 회사에 나와서 일했는데 억울했다. 법으로 정해진 출산휴가 90일을 쓰고 육아휴직으로 두달 반을 더 썼다는 것이 그 이유라니. 박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육아휴직을 갔다 오면 인사고과는 최하점을 받는 것이 관례다. 아이를 낳으면 경력 1년이 사실상 날아간다. 만년 대리로 미혼 후배들을 부러워하며 신세 한탄 할 자신을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복직 전 인사과 관계자와 상담을 하면서 내년 말에는 둘째 생각도 있다 했더니 "인사과에 대놓고 둘째 얘기 하는 것 아니다"라며 핀잔을 들었다.
"맘 놓고 낳으라더니…."
"일이 얼마나 바쁜데 육아휴직자를 보내는 게 말이 되냐!"
박씨 부부는 진지하게 이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다. 이대로는 제대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격주로 도와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부탁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방에 있는 친정어머니는 박씨의 휴무에 맞춰 경기도 용인까지 한달에 두 번씩 올라온다.
지난해 12월 육아 휴직 당시 발령이 났을 때 파트장은 직원들에게 육아휴직자를 받았다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복직 기간을 몰랐다고 파트장은 말했다. 반년 정도 밖에 쉬지 않았는데 적응은 왜 이렇게나 힘든지. 출근 시간 운전대를 잡은 박씨는 신호 대기만 받아도 졸기 일쑤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 만성 피로와 근육통이 온 몸을 엄습해온다.
네덜란드는 정규직도 파트타임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육아와 동시에 회사를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린이집까지 가게 되면 등·하원 시키는 문제에 아이가 아프면 어떡하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왜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는지. "아, 정말 이민 가고 싶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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