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 지난해 4월 부산의 한 달동네 주택에서 치매를 앓던 A씨(84·여)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됐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인 A씨에게 매달 한 번씩 쌀을 배달해주는 자원봉사자가 A씨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한 달 전 자원봉사자가 가져다준 쌀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고 밥을 지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A씨는 숨지기 전까지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웃과 교류도 거의 없었다.
노인들의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은퇴 후 여행을 다니며 여생을 즐기겠다는 그럴듯한 꿈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자식들에 의지해 살자니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충분히 은퇴자금을 모으지도 못해 늘그막의 생계 걱정이 삶을 옥죈다. 살아온 세월만큼 보고 들은 것은 많아 이러쿵저러쿵 세사에 간섭도 하고 목소리도 높여보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간혹 전해지는 노인 고독사 뉴스를 보면 이러다 나도 쓸쓸하게 죽어가는 게 아닌가 덜컥 겁도 난다. 생존의 문제와 자존의 문제가 모두 위협 받고 있는 것이 2016년 한국을 사는 노인들 현주소인 셈이다.
◆노인 빈곤율 1위의 오명= 지난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49.6%로 1위였다. 노인의 절반이 중위소득 50% 미만으로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OECD 평균인 12.6%의 4배에 달했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들 대부분이 거주하는 집 등 부동산 외에는 별다른 자산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인들은 생업 전선에 나서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의 28.9%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들 중 79.3%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정부는 노인 빈곤율을 현재 49.6%에서 2020년까지 39%로 10%포인트 낮추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위한 현실적인 대책은 아직 없다.
◆가난보다 더 슬픈 것은 외로움= OECD가 발표한 자료에서 1위에 오른 것은 노인 빈곤율뿐만이 아니다. 고령자 자살률(인구 10만명당 55.5명)도 OECD 국가 중 1위였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 5명 중 1명은 현재 홀로 살고 있으며 앞으로 20년 뒤에는 그 숫자가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는 독거노인이 137만8000명으로 전체 노인 가운데 20.8%를 차지한다고 추정했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2010~2035)에 따르면 독거노인 수는 2025년 현재의 1.6배인 224만8000명으로 증가하고 2035년에는 현재의 2.5배인 343만명으로 다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노인 가운데 독거노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5년에는 21.8%로, 2035년에는 23.3%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노인 생계형 범죄도 증가= 고령화와 빈곤은 노인 범죄 증가라는 새로운 사회 문제도 가져왔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10일 공개한 '치안전망 2016'에 따르면 올해 61세 이상 노인이 저지르는 범죄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노인 범죄는 이른 정년과 고용불안이 경제적 빈곤과 생계 위협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심리적 불안·위축, 사회적 고립 상황이 생길 때 증가한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경찰에 따르면 실제로 61세 이상 범죄자는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9.1% 증가했다. 이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스리랑카보다 못한 노인복지= 하지만 노인 복지 수준은 여전히 낮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영국의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이 발표한 '2015년 세계노인복지지표'(GAWI)를 보면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수준은 세계 96개국 중 60위였다. 점수로는 100점 만점에서 44점을 받았다. 2014년에는 50.4점으로 50위를 기록했었다. 60위는 우리나라 노인복지가 크로아티아(61위), 러시아(65위) 등과 비슷한 수준이며 스리랑카(46위), 필리핀(50위), 키르기스스탄(51위), 타지키스탄(58위) 등보다 떨어진다는 얘기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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