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총기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미국을 뜨겁고 달구고 있다. 임기를 불과 1년 남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에는 반드시 숙원을 풀겠다며 총기 규제 행정명령이란 칼을 뽑아들었다. 반면 야당인 공화당과 대선주자들, 총기 소지를 옹호하는 보수 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정면 대치에 들어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모든 총기 판매인의 정부 등록과 구매자 신원조회 의무화를 골자로 한 강력한 총기 규제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그는 총격 사건 희생자의 가족, 총기 규제 활동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발표식에서 "사람들이 (총기 사고로) 죽어가고 있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2012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진 (샌디훅) 초등학교 1학년생 27명을 생각하면 미칠 지경"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의 눈물'은 국민을 향한 읍소인 동시에, 이번엔 반드시 반대파의 저지선을 돌파하겠다는 '결기'로 읽힌다.
이날 공개된 행정명령은 온라인이나 총기 박람회에서 판매하는 사업자까지 포함한 총기 판매업자들의 면허 취득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들 사업자는 또 총기 판매에 앞서 구매자에 대한 의무적인 신원 조사를 해야 한다. 신원 조사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총기를 팔 수 없다.
그러나 오바마의 행정명령은 출발부터 엄청난 반발에 직면해 있다. 전통적으로 개인의 총기 소유를 옹호해 온 공화당과 대선 주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이번 조치가 의회를 통하지 않아 월권인 데다가 개인의 총기 소지 자유를 인정한 수정헌법 2조에 위배된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공화당 대선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이미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행정명령을 폐기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테드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도 "오바마의 위헌적 행정 조치들에 맞서 싸우겠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1791년에 제정된 미국 수정 헌법 2조에는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당시엔 독립 전쟁과 이후 각 주의 치안유지 등을 위한 민병대의 무장권리를 허용한 것이었다. 이후 서부 개척 시대 등을 거치면서 미국인들에겐 '안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총을 소유할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는 의식이 깊이 뿌리내렸다.
오바마 대통령도 수정 헌법 2조 논란과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 행정명령이란 우회 경로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는 차기 대통령이 언제든 폐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논란은 결국 올해 내내 대선의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미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강력한 총기 규제 필요성을 외치며 공화당 후보와의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과거에도 정치권에서 총기 규제 시도는 빈번히 있었지만 미국 내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로 손꼽히는 전국총기협회(NRA)의 벽에 막혀 번번이 무산된 적이 있다. NRA는 미국의 총기산업과 보수파 억만장자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 의원들을 압박해 왔다. 이번에도 NRA는 총력 저지를 선언한 상태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 진영도 만만치 않다. 총기 규제 지지 단체들의 힘도 막강해졌다. 특히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으로부터 3600만달러(428억원)를 지원받은 '총기안전을 위한 에브리타운'은 강력한 로비전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지난 연말 미 프로농구(NBA) 톱스타들이 나온 총기 반대 광고도 이들의 작품이었다.
강력한 총기 규제는 미국 역대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한 난제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엔 미국 내 여론도 총기 규제로 힘을 싣고 있다. 누가 최후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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