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인물도안 왜 오른쪽에 있는 이유는?…돈이 세상에서 제일 더럽다는 속설은 맞는 말일까?
※이 기사는 돈을 '쩐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의인화해서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피천득이 쓴 수필 '은전 한닢'의 마지막 문장이야. 아무런 설명이나 감상 없이 '돈'이라는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 성취의 기쁨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수필이지. 늙은 거지가 한 이 마지막 말은 진한 여운을 남기지. 돈이란 게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가치가 되는 것이자 희망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하게 되지.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돈에는 재미있는 비밀이 숨어 있지.
◆지폐 속 인물도안이 오른쪽에 있는 이유?
오만원권의 신사임당, 만원권의 세종대왕이 왜 지폐 오른쪽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우리나라 지폐의 인물들이 처음부터 오른쪽에 있었던 것은 아니야. '왼쪽→가운데→오른쪽'의 궤적을 그려왔지.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간 최초의 한국은행권 1000원권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 당시 발행된 1000원권은 일본내각인쇄국에서 제조한 최초의 우리나라 은행권이지. 1950년 7월22일 발행됐는데 당초 문양이 지폐 테두리를 감싸고 있고 이승만 초상이 그려진 인물도안이 왼쪽에 있어. 1953년 12월18일 한국조폐공사에서 처음 발행된 신 100환권도 이승만 대통령 초상이 왼쪽, 독립문이 오른쪽에 위치해 있지.
그러나 1956년 3월26일 첫 발행된 500환권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이 중앙으로 이동했어. 한국조폐공사 관계자는 "왼쪽에 있던 인물초상 위치가 1956년 중앙으로 옮겨진 것은 당시 냉전의 대립구도 아래서 '좌경'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지. 종이 지폐에서도 반공의식이 강하게 드러났던 거야. 그시절 왼손잡이들이 선생님한테 혼났던 것처럼 지폐에서도 그런 압박이 있었다네.
그런데 1년이 지난 1957년부터 발행된 지폐(천환권)에는 오른쪽으로 이동했지. 이 지폐를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은행 휘장과 함께 오른쪽에 배치돼있어. 이후 나오는 지폐에서는 모든 인물도안이 다 오른쪽에 위치해. 좌경 거부감 탓에 중간으로 옮겨진 지폐가 1년만에 다시 오른쪽으로 이동한 이유는 뭘까. 조폐공사의 설명이 이래. "지폐를 접으면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이 반으로 접혀 훼손되는데 이는 국가원수 모독이라는 지적이 있어서 옮겼다."
◆돈, 정말 세상에서 제일 더럽나?
곰팡이, 꽃가루, 위염, 폐렴, 포도상구균, 식중독 유발 세균, 탄저균 유발 세균, 코뿔소와 개 말 DNA, 3000여개의 세균. 1달러짜리 지폐에 이 많은 세균들이 붙어있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적이 있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게 돈'이라는 속설이 틀린 말이 아니지. 특히 종이지폐는 손바뀜도 잦고 광범위하게 움직여 다니는 데다 늘상 사람체온과 붙어있는 지갑에 들어 있다보니 '세균 배양 샬레'처럼 더러운 것들의 온상이 되기가 쉽지.
작년 4월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한 실험에선 1달러 지폐에서 3000여개가 넘는 세균이 나왔대. 뉴욕 맨하탄에서 수집한 1달러짜리 80장에 묻어있는 이물질을 DNA 전수 검사를 통해 조사한 결과야. 여기엔 각종 박테리아와 곰팡이, 꽃가루, 동물 분비물 등 유전자 3000여종이 검출됐어. 지폐 오염물질에 대해 DNA검사가 이뤄진 것은 이 때가 처음이야. 기존 연구는 현미경을 통해 이뤄졌고 박테리아 100여종을 검출하는데 그쳤었지. 이번 결과는 표본을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방식 대신 지폐 표면의 유전자 물질을 최신 컴퓨터 장비로 검사한 탓에 이전에 발견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오염물질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해.
지폐에 가장 흔한 오염 물질은 여드름 같은 피부 질환을 유발하는 박테리아였대. 위염, 폐렴, 포도상구균,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항생제에 내성을 갖춘 박테리아도 나왔대. 이중 일부는 항생제에 대한 내성도 보유한 균이었어. 극소량이긴 하지만 탄저균과 디프테리아균 같은 치명적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세균도 나왔어. 대형마트의 카트나 PC방의 마우스, 엘레베이터 버튼 등 세균이 많이 검출된다고 하는 곳보다 더 심하지.
실제로 1달러 지폐에선 12억개의 DNA조각도 나왔다고 하니 놀랍지. 더 놀라운 건 이 중 절반은 사람의 DNA가 아니야. 나머지 절반 중 정체가 확인된 종류는 20%에 불과해. 개나 말 같은 동물은 물론 흰코뿔소 같은 희귀 동물의 DNA도 나왔다네. 뉴욕대 유전자ㆍ시스템생물학센터에서 유전자 배열을 맡고 있는 제인 칼튼은 "미생물들이 지폐위에서 자라고 있었다"고 했지. 호주화폐전문기업 인노비아시큐리티의 필립 에띠엔느 이사는 "체온과 같은 온도의 지갑은 사실상 세균배양접시같은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어. 캐나다나 부탄 등 몇몇 나라가 내구성을 이유로 플라스틱 재질의 지폐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야. 물론 이들 지폐는 오염도가 낮다는 장점이 있으나 특정 세균은 플라스틱 지폐에서 되레 오래 살 수도 있는 측면도 있다고 해.
그러니까 사실 어느정도 수명이 지나면 화폐가 한국은행 정사실로 옮겨져 폐기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하지. 지폐 자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고 많이 옮겨져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로 전락해서는 안되겠지.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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