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짜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우리 경제의 양대 축인 내수와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내수회복을 위해 지난해와 올해 확장적 재정정책과 대대적인 소비진작책을 실시한 상황이어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
내년에는 처음으로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을 것으로 예상돼 재정 여력도 충분치 못한 상황이다. 더욱이 경제부총리 교체가 코 앞으로 다가와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의지에 따라 경제정책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사령탑의 '리더 리스크'가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2일 "오는 20일 전후에 새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내수회복 기조를 이어가고 4대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내년 경제정책의 큰 방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틀이 어느 정도 만들어졌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두고 기재부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새롭게 펼칠 만한 정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기재부는 올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터지자 개별소비세 인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실시, 주택연금 활성화 방안 등을 추진했다.
개별소비세 인하와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도입은 하반기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0월 소매판매는 가전제품 등 내구재(7.7%), 의복 등 준내구재(8.1%) 판매 증가에 힘입어 전월에 비해 3.1% 늘어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9월 0.6%에서 10월 0.9%로 오른 데 이어 지난달에는 1년만에 1%대를 회복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 초 소비절벽이 일각에서 우려하는 만큼 크지는 않더라도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올해 내수회복을 위해 쓸만한 정책은 대부분 내놓아서 내년에는 어떤 정책을 꺼내야 할 지 고민"이라고 전했다.
내년에는 재정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재정·금융·세제·규제개혁 등을 망라한 '41조원+α' 정책패키지를 추진했고, 올해는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했다. 이 같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면서 재정건전성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올해 38.5%로 예상되는 국가채무비율이 내년에는 40.1%로 오를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이 전망은 경상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각각 4.1%, 4.2%를 달성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성장률이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관계자는 "올해 메르스 사태와 가뭄 피해를 이유로 사실상 경기활성화를 위한 추경을 실시했지만 내년에는 재정건전성 악화를 감안해볼 때 웬만해서는 재정을 통한 추가적인 경기진작책을 내놓기 힘든 상황"이라며 "내년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할 경우 정책적 대응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르면 이번 주말로 예상되는 개각도 내년 경제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 부총리가 펼친 경제정책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차기 부총리도 큰 틀에서는 기존 경제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기존 정책에 대해 각을 세우고 새로운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각이 이달 초중순께 이뤄지면 최 부총리보다는 차기 부총리 후보자의 의견을 새해 경제정책에 담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다른 부처와의 협의는 물론 기재부 내부적으로도 충분한 고민 없이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의욕이 앞서서 섣불리 정책을 펼치면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경제사령탑의 리더십을 잃는 결과를 가져오게 돼 향후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현 정권의 실세인 최 부총리 만큼 정책 추진에 힘을 실을 수 있을 지도 관건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의 경기 둔화, 유럽 경제 부진 등 우리 경제의 외부변수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느냐도 내년 경제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지 않도록 내년에도 구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는 만큼 차기 부총리의 리더십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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