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단, 전문성 역할 미세조정한 '이재용 디테일 人事' 왜?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지난해부터 강도 높은 사업재편을 단행하며 '전시 경영'을 선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택은 "전쟁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 대신 미래전략실을 비롯한 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대부분 유임시키며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뒀다.
사실상 올해 처음으로 그룹 인사를 재가하는 이 부회장이 최소 5~6명 정도의 계열사 대표 이사를 교체하고 젊은 CEO들을 대거 전진배치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전혀 달랐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계열사 사장단은 모두 유임하고 금융계열사 사장들도 전원 자리를 지키는 소폭에 그쳤다.
◆전자ㆍ금융계열사 사장 전원 제자리 지켜=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계열사와 금융계열사 사장 전원이 유임됐다. 대표이사가 교체된 계열사는 삼성SDS가 유일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권오현 DS부문장(부회장), 윤부근 CE부문장(사장), 신종균 IM부문장(사장)이 모두 제자리를 지켰다. 단, 윤 사장과 신 사장은 겸임하고 있던 사업부장 자리를 후배들에게 넘겨줬다.
오랫 동안 부문장을 맡으며 삼성전자의 성장을 이끈 세 사람을 그대로 유임시키는 대신 사업부장 자리를 넘겨 안정 속에서 변화를 찾은 것이다. 금융계열사를 비롯한 나머지 계열사들의 CEO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유임됐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숨 가쁘게 진행됐던 사업재편으로 인한 피로감에 CEO까지 바꿀 경우 자칫하면 임직원들이 구심점을 잃고 사업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 모두 이 같은 사안을 우려해 CEO들을 대부분 유임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위기 상황에서 수장을 교체하는 것보다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가진 CEO들이 제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라며 "전자의 경우 부문장은 제자리를 지켰지만 실제 사업을 맡는 사업부장은 새로운 인물들을 배치해 연륜과 경험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단행됐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 회장 승진 고사..."승진 보다 경영에 전념"= 관심을 모았던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없었다. 병환으로 입원중인 이건희 회장의 장기 부재를 우려한 최고위 경영진들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권했지만 이 부회장이 "승진이 아닌 경영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제자리를 지켰고 이서현 사장은 삼성물산 패션부문 경영기획 담당에서 패션부문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함께 겸직하고 있던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자리는 내려놓았다. 이번 인사를 통해 이 사장은 패션이라는 자신의 주요 영역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게 됐다.
삼성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가장 큰 변화는 이서현 사장이 겸임하고 있던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자리를 내려놓았다는 것"이라며 "오너 3인이 서로 전자, 호텔, 패션 부문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한편, 경영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래전략실 체제 종전 그대로 유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차장(사장)을 비롯한 미래전략실 역시 종전 그대로 유지된다. 이번 인사를 통해 법무팀장을 맡고 있던 성열우 부사장과 인사지원팀장을 맡고 있던 정현호 부사장은 모두 사장으로 승진했다. 두 사람은 사장 승진 뒤 계열사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별도 이동 없이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한다.
미래전략실 각 팀 역시 별도 역할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된다. 삼성그룹의 사업재편이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미래전략실에 변화를 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사업재편이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시점에서 미래전략실을 축소한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년에도 후속 사업재편 작업이 많이 남아있는 만큼 역할과 규모는 물론 각 팀의 업무 역시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올해 인사 지주사 전환 사전정지 작업"= 재계는 삼성의 올해 인사가 지주사 전환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 삼성전자가 계열분리를 하거나 삼성물산과의 합병 등에 나설 경우 조직에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대규모 인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어떤 식으로든 현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지주사 전환이 끝나고 나면 미래전략실의 역할도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삼성전자 역시 지주사 전환 방식에 따라 변화를 겪게 되는 만큼 이번 인사가 소폭에 그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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