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對국회 강경발언…물갈이 여론 조성·집권 하반기 개혁법안 통과 의원수 확보 전략
[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대(對)국회 비판 강도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지난 5월 4일 낡은 정치를 언급한 이후 국민의 심판, 진실한 사람 선택에 이어 급기야 직무유기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박 대통령의 비판은 여당을 포함한 국회 전체를 겨냥한 것이라 내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둔 '물갈이 전조'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기회를 놓쳐 우리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그때는 모두가 나서서 정부를 성토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라며 국회에 직격탄을 날렸다. 내년 20대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 같은 발언은 일단 정부ㆍ여당이 추진 중인 법안 처리를 막고 있는 야권에 대한 '심판론' 명분 쌓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당도 박 대통령의 비판의 칼날 위에 서 있다.
박 대통령은 "백날 경제를 걱정하면 뭐 하느냐.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은 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날을 세웠다. 특히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다른 이유'라는 건 법안 통과를 위해 야권과의 생산적 협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여권을 탓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진실한 사람만 선택 받도록 해 달라"와 "배신의 정치를 국민이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했던 6월 25일 발언을 포함해 올해 국무회의 석상에서만 세 번이나 '대 국회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점차 올리고 있는 데에는 국회의원의 무능과 무책임을 지적해 '물갈이'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또 친박(친박근혜)의 대거 국회 입성에는 여권의 '공천 물갈이'가 먼저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국회 전체를 겨냥한 여론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일부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진은 내년 총선을 통한 여의도행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개인일정은 내려놔야 한다"며 총선에 관심을 보이는 인사들에게 공개 경고를 날렸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강공 드라이브는 내년 총선 이후 집권 하반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최대 공약인 4대 개혁과 경제 활성화 정책이 답보인 상태에서 내년 총선에 '김무성 호(號)'가 승리해도 남는 건 레임덕이 전부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친박이 주도하면서 여당이 국회선진화법 아래서 각종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180석(총 국회의원 3분의 2)을 확보할 경우 집권 말기까지 정책 추진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박 대통령의 국회 비판에 대해 야당은 "대국민, 대국회 선전포고"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여당은 "야당은 대통령 탓하기 전에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며 맞섰다.
한편 여야 원내지도부는 이날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지원 문제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한 협상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또 정부ㆍ여당이 주장하고 있는 경제활성화법과 노동5법 등에 대해서도 여야 간 인식차만 확인했다. 여야는 26일 한중 FTA 비준안을 포함해 계류 안건을 처리키로 했으나 예정대로 본회의가 개최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라 당분간 청와대와 국회, 여야의 강대 강 대치는 계속 될 전망이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