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하면서 대한민국 정치사에 남긴 공과(功過)가 주목받고 있다. 금융실명제 도입과 하나회 척결 등 과감한 개혁은 역사적 평가를 받는 반면, 외환위기와 측근 비리 등은 대표적인 과오로 꼽힌다.
◆ 금융실명제 도입 = 금융실명제 도입은 문민정부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1993년 8월12일 오후 7시45분 "이 시각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뤄집니다"라는 특별담화 발표로 전격 실시됐다. 추진 과정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후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세원을 발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치·경제·사회적 부패 고리를 끊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 성역화 =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광주민중항쟁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승화, 전두환 정권의 광주유혈진압에 대한 죄를 물었다. 이는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하나회 척결 =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하자마자 군부 사조직이자 쿠데타를 주도했던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개혁의 기치를 높게 들었다. 당시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과 서완수 국군 기무사령관을 전격 교체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1980년 신군부세력 등장 이후 군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육군 내 하나회 인맥의 대수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하룻밤새 떨어진 별이 50개로 당시 파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케 한다.
◆ 2002 한·일 월드컵 유치 =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도 김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그는 취임 직후 월드컵 유치 전에 뛰어들었고, 일본과 공동 개최에 성공했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가 당시 월드컵 유치위 부위원장이었다. 아시아 최초로 열린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우리나라는 역대 최고 성적인 4강에 올랐다.
◆ 1993년 남북정상회담 =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 이후 김일성과 남북정상회담을 약속하고, 남북고위급 회담과 적십자회담을 통해 이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담을 목전에 두고 1994년 7월 김일성이 갑자기 죽으면서 남북관계는 임기 내내 풀리지 않았다.
◆ 3당 합당 = 김 전 대통령은 1990년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등 3당을 합쳐 민자당을 창당했다. 평생 투쟁의 대상이었던 정치 세력과 손을 맞잡은 것에 대해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여당의 2인자로 변신에 성공했으며, 우여곡절을 거쳐 2년 만인 1992년 5월 민자당 후보로 선출돼 같은 해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보수성향의 여권세력과 '야합'을 했다는 변절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 줄 이은 참사 = 문민정부 내내 대형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994년 10월21일에는 서울 성수대교 붕괴되는 초유의 사고가 일어났다. 또 1995년 4월2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공사장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건으로 101명이 사망하는 등 24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같은 해 6월 29일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무려 501명이 사망하고, 6명 실종, 937명이 부상하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있었다. 1997년 8월6일에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서 추락해 승객 승무원 229명 사망했다.
◆ 측근 비리 = 김 전 대통령은 아들 현철 씨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측근들을 앉히고 사실상 국정을 농단한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소통령' 권력을 행사해 온 끝에 한보비리특혜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는 등 집안 다스리기에 실패, 오점을 남겼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김현철 씨에 대한 첩보가 계속 보고됐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를 외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오락가락 대북정책 = 남북 관계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994년 6월 북핵 위기로 미국 정부가 북한 핵 시설 공습을 계획하면서 한반도가 전쟁위기로 치닫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반대로 전쟁을 막았다고 했지만 문민정부 대북정책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오락가락했다. 김일성 사망 후 남북관계는 갈수록 악화돼 조문파동, 북한 잠수함 강릉 침투,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씨 피살 등으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 김 전 대통령은 금융기관의 부실, 방만한 경영을 해온 대기업의 연쇄부도, 단기외채의 급증 등으로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 위기에 이르자 1997년 12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사실상 경제주권을 내줘야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임기내 1인당 1만 달러 소득과 OECD 가입이라는 치적에만 관심을 보이다 개혁에 실패한 결과라는 비판도 받는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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