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거액 현금 찾은 뒤 자취 감춰…부인, 법원에 이혼소송 "재산 50대 50 분할"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30년이 넘게 부인과 '구걸'로 생계를 이어갔던 남편이 거액의 현금을 찾아 자취를 감췄지만, 부인의 이혼 소송에 따라 재산의 절반인 8억원을 넘겨주게 됐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판사 권태형)는 시각장애 1급인 부인 A씨가 시각장애인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 소송에서 이혼판결을 내렸다고 1일 밝혔다.
시각장애인 1급인 이들 부부는 1976년 결혼해 4남 3녀의 자녀를 낳고 살았다. 이들은 30년이 넘도록 구걸로 생계를 이어갔다. 부부의 재산은 확인된 금액만 15억9200만원에 달했다.
이러한 재산이 구걸에 의한 결과물인지 부동산 증식 등 다른 원인에 따른 결과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경제권은 남편이 독점했다. 부인 이름으로 된 재산은 0원이었다. 남편은 자녀까지 동원해 구걸에 나서려 했고, 부인은 자녀만큼은 구걸에 동원하지 말자고 만류했다.
구걸 문제로 부부 관계는 악화됐고, 폭력까지 이어지면서 가정은 위태로워졌다. 이윽고 남편은 2010년께 시중 은행 4곳에서 현금 12억원을 출금해 자취를 감췄다.
부인은 남편이 거액의 돈을 출금해 사라진 뒤 거주지는 물론 생사도 알 수 없었다. 남편 이름으로 된 아파트라도 지키겠다는 심정으로 이혼을 결심한 뒤 법원에 문을 두드렸다.
부인은 '공시송달(公示送達)'에 의한 방법으로 이혼소송을 진행했다. 공시송달은 상대의 주소를 알 수 없어 통상적인 방법으로 서류를 보낼 수 없을 때 당사자 신청이나 법원이 직권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법원 사무관 등이 송달할 서류를 보관하고 그 이유를 공보나 관보 또는 신문에 게재하는 방법과 법원게시판에 게시하는 방법이 있다.
재판부는 "재산 취득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부부가 노력해 형성 또는 유지한 공동 재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 "재산분할 비율을 50 대 50으로 해 7억9600만원씩 나누라"고 판결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 소송은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부부 일방이 어느 날 재산을 챙긴 뒤 자취를 감추더라도 법원의 이혼소송 등을 통해 재산을 분할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 판결로 재산분할이 결정되더라도 상대방은 '추완 항소'를 통해 다시 재판을 받아 재산분할을 재정리할 수 있다.
민사소송법 제173조는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말미암아 불변기간을 지킬 수 없었던 경우에는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2주 이내에 게을리 한 소송행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법원의 한 판사는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이 결정되더라도 추완 항소라는 구제 수단이 있기 때문에 대응할 방법이 있다"면서 "이혼 결과에 불만이 있다면 추완 항소를 통해 다시 재판을 받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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