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승용]
“규정에 의해 재택근무를 요청했는데 ‘울면서 힘들어서 못다니겠다.’는 거짓말을 직원들한테 했다. 인간적 모멸감을 준 것이다.”
호남지방통계청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은정(여·41, 광주시 남구 송하동)씨는 2014년 8월 30일경 호남지방통계청 강진사무소에서 무기계약근로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열람, 지원해 높은 경쟁률 뚫고 합격했다.
최 씨는 사업장의 위치가 멀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지원한 이유는 고용이 안정화되면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심적 부담이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강진은 부모님의 고향이어서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시계약직으로 근무하던 2012년 9월부터 14년 2월 당시 영광군 법성면(편도 50㎞, 강진 75㎞)으로 출장을 수행하던터라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자택과 사업장이 멀 경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제도를 알고 있었고, 그런 규정을 이용하는 통계조사관도 주위에 있어서 차후 재택근무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컸다.
그가 그토록 무기계약직 공채에 목을 맨 것도 남편이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에 근무하다보니 자신이라도 4대보험이 가입된 사업장에서 근무를 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최씨가 이같은 심정으로 취직하게 된 통계청에서의 근무는 1년여 동안 기쁨보다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무기계약직에 합격한 최 씨는 손 모 강진사무소장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당신은 도대체 왜 강진사무소에 지원을 했냐”는 불쾌한 질문을 받아야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최 씨도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손 소장과의 통화는 추궁하는 듯 이어졌고, 최 씨는 손 소장이 자신을 달갑지 않게 여긴 걸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최 씨는 손 소장의 직권남용으로 인한 몹쓸 ‘갑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2014년 9월18일. 강진사무실에 첫 출근한 최 씨는 직원 전체가 모인자리에서도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나흘 뒤 A팀장이 휴게실에 모인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최 씨를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신입식이 끝났다.
최 씨는 손 소장이 자신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고 생각했던터라 손 소장과 친근한 유대관계를 만들고 싶어 출근하는 손 소장에게 “차 한잔 드릴까요?”라고 여러 차례 청했지만 대답은 항상 “아니 됐습니다.”라는 간단한 답변만 들어야 했다.
최 씨는 몇 차례 더 노력을 해봤지만 손 소장이 자신을 대하는 차가운 태도가 바뀌지 않자 서로 상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이상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3개월의 수습기간 동안 손 소장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손 소장은 다짜고짜 “넌 재택 할 수 없다”고 최 씨에게 통보했다. 그 이유는 관할지역인 완도, 영암, 장흥, 강진 거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씨는 “재택이 안된다.”는 순간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웠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 둘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재직하는 동안 규정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120여만원도 채 안된 급여를 받으면서 교통비로 대부분을 지출하고 있는 최 씨는 2014년 12월 1일 둘째 아들의 일기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사진 참조)
둘째 아들 정 모(9·초등3년)군은 광주에서 강진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엄마가 걱정돼 2014년 12월 1일 눈이 내리는 수업 중 “간절한 기도”를 했다.
“눈이 꽤 많이 와서 먼 길을 출퇴근하는 엄마가 걱정되서 그 순간 눈감고 두 손을 간절히 모아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 했다.”
“눈이 그치게 해주세요.”
그는 “자녀에게 이런 걱정까지 준다는 생각을 하니 과연 나의 선택이 옳은 걸까? 나의 선택이 나중에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일로 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한참 동안 괴로웠습니다”고 밝혔다.
최 씨는 이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흐르네요. 보통은 자녀가 부모에게 걱정을 주는데, 전 그렇게 좋아하던 눈을 싫어하게 만드는 그런 어미, 이 직업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다음날 눈이 오는 출근길에 버스에 몸을 싣고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2015년 8월 3일 호남지방통계청 재택근무 지침을 변경했다. 이를 공람한 최 씨는 자신도 재택근무기준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일 년여 동안 손 소장의 말만 듣고 믿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왜 이 같은 규정에 대해 살펴보지 않았을까? 정말 기가 막힐 뿐이었다.
최씨는 재택의 규정에 대해 호남지방통계청 조사지원과 인사담당자에게 자신도 재택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인사담당자의 답변은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손 소장은 “재택근무가 안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 이유는 ‘일 년 밖에 안됐고, 면접당시 출퇴근을 한다고 했으니 안된다’는 고집을 피웠다.
최 씨는 손 소장을 만나 사견인지 기관의 의견인지 물었다.
손 소장은 “일년 밖에 안됐는데.....면접 때 출퇴근한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최 씨의 재택근무를 결재하지 않았다.
손 소장은 이도 모자라 비웃듯 큰 소리로 “내가 이 규정을 만든 사람인데, 규정을 모를 것 같으냐?”며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은정씨가 가끔 안쓰러울 때도 있었지만 면접시 출퇴근을 한다고 했으니 나도 어찌 도와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선례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씨는 현재 전주에 거주하는 조사관과 진안사무실 조사관이 정읍사무실로 재택근무하는 선례를 들어 이야기했지만 손 소장은 그들과 입직경로가 다르다며 최 씨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다.
최 씨는 너무너무 분하고 원통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손 소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묵묵히 일하며 막연히 기다려온 희망이 손 소장의 벽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났다.
최은정 씨는 “규정대로 움직인게 아니라...통계청 기관이 어느 한 사람의 감정으로 움직인 것 같다”며 “호남지방통계청은 규정이 있으나마나 한 것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손 전 강진사무소장은 “일방적인 주장이다”며 “딱 한번 찾아와 재택근무를 요청했고, 백만기 청장님께 보고했으나 같은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문승용 기자 ms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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